새해 들어 세계 프로골프에도 당구계와 같은 진통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대항하는 새로운 프로골프 투어가 2022년 출범을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출범한 프로당구 PBA 투어와 UMB 세계캐롬연맹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통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골프계는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당구의 ‘PBA vs UMB’의 싸움처럼 PGA와 PGL은 선수 영입을 두고 한바탕 홍역을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 출범을 발표한 프로골프 투어는 ‘월드골프그룹(WGC)’이 주도하는 ‘프리미어골프리그(PGL)’다. PGL은 오는 2022~2023년부터 연간 2억4000만달러(한화 약 2840억원)의 총상금을 걸고 투어를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부분은 출전 선수 숫자를 48명의 소수정예로 줄여서 PGA와 차별화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PGL의 대회당 우승상금이 크게 올라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총 18개 대회를 계획하고 있는 PGL의 1개 대회에서 최소 1000만달러, 우리돈으로 약 119억원의 총상금이 걸릴 것으로 보이며, 우승상금은 최소 500만달러(약 59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로 선수에게 가장 큰 명분은 돈이다. 프로선수가 돈을 좇아가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PGL은 바로 이 점을 공략했다. PGL은 우승상금을 PGA의 2배로 만들어서 오랜 전통의 PGA에서 톱랭커 48명을 빼내려 하고 있다.

총상금만 놓고 보면 PGA가 4억달러(약 4700억원)로 PGL 보다 한참 많지만, 투어 출전권을 쥔 선수가 150명 안팎이고 투어가 많아 덩어리가 큰 PGA의 우승상금은 200만달러(약 24억원) 수준으로 PGL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정상급 선수들은 PGL의 유혹이 솔깃할 수밖에 없다.

PGA가 만약 상위 랭커 48명을 PGL에 빼앗기는 상황이 되면 50년 전통의 골프투어가 하루아침에 2부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1968년 미국 프로골프협회에서 독립하면서 이후 50년 넘는 전통을 유지하며 지금의 프로골프를 키워온 PGA의 입장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PGA는 자신의 선수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벌써부터 칼을 빼드는 형국이다. PGL의 출범 발표 이후 PGA의 제이 모나한 커미셔너는 선수위원회의 위원 16명을 소집해 “선수들이 PGA와 PGL 투어 양쪽을 뛸 수 없다”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지난해 당구계에서 일어났던 일과 똑같은 일이 프로골프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해 출범한 프로당구 PBA 투어가 억대의 우승상금으로 UMB 선수들을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UMB에서 뛰던 몇몇 선수들이 SNS를 통해 PBA 출전을 선언하자 UMB에서는 PBA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UMB 주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한 바 있다.

그로 인해 당시 세계랭킹 2위였던 프레데릭 쿠드롱(벨기에)은 제재 이후 UMB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PGL도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비롯해 필 미컬슨(미국),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등 PGA의 간판선수들에게 지난해 말부터 영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즈는 PGL 합류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고, 매킬로이는 PGL의 제안을 거절했다. 반면, 미컬슨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사우디인터내셔널 개막에 엎서 열린 프로암 당시에 PGL 주요 인사들과 함께 라운드를 한 사실이 스코틀랜드 일간지 ‘스코츠맨’에 보도되면서 PGL로 거취를 옮기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미컬슨은 스코츠맨과의 인터뷰에서 “PGL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었고 어떤 것이 팬과 스폰서를 위해 더 나은 것인지 생각해 보겠다”라고 다소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또한, PGA와 PGL은 일정 자체가 중복되기 때문에 양대 투어를 병행해서 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출범한 pba 투어는 사상 최고 상금을 걸고 당구의 프로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지난해 출범한 pba 투어는 사상 최고 상금을 걸고 당구의 프로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선수들은 PGA 잔류와 PGL 전향 등 2가지 선택권을 놓고 고민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안정적인 PGA 투어에 남느냐, 아니면 황금알을 낳는 PGL로 이적하느냐의 갈림길에서 각자 선택한 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리는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당구도 UMB와 PBA의 일정이 중복될 수 있고 병행해서 투어에 출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두 단체의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선수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UMB와 PBA의 2가지 길을 놓고 진로를 선택했다.

선수는 물론, 골프계 입장에서 대형 프로투어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연간 총상금이 60억원 정도인 당구계 입장에서는 마냥 부럽기도 하다.

PGL이 계획대로 출범을 하게 되면 양대 투어의 연간 총상금은 무려 7500억원 규모로 커지게 된다.

다만, 투어의 중요도와 인기에 따라 PGA는 많은 수입을 PGL과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팬들 입장에서는 정체되어 있는 지금보다 더 나은 투어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골프 산업도 다시 한번 호황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세계 골프계는 PGA에 대항하는 PGL의 출현을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바로 PGL을 출범시키는 WGG에 대한 신뢰성이다. 항간에는 “PGA처럼 오랜 시간 프로골프 투어를 키워온 단체가 아닌 신생 WGG가 과연 아무 문제 없이 PGL을 수십년 동안 지속 개최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WGG는 뉴욕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과 라스베이거스의 스포츠 도박업체들의 투자로 PGL을 출범한다고 밝혔다.

거기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머니가 지원을 하기로 했다는 뒷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WGG는 미국 투자은행인 레인그룹과 파트너십을 맺었다는 사실 외에 어떤 정보도 알려져 있지 않다. WGG의 실체가 알려지지 않으면서 신뢰를 얻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골프계에는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94년 호주의 세계챔피언 그렉 노먼이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을 등에 업고 프로투어를 추진하다가 실패했다. 자본의 힘만으로도 풀 수 없는 문제가 있었던 듯싶다.

오래전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초창기에도 이런 자본 전쟁이 벌어졌었다. 현재 MLB는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의 양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에는 내셔널리그에 대항하는 아메리칸리그와 플레이어스리그가 있었지만, 자본 전쟁에서 밀린 플레이어스리그는 끝내 무너졌고, 아메리칸리그는 끝까지 버텨내면서 내셔널리그와 화해를 하게 되어 지금 MLB 체제를 만들어냈다.

골프의 PGA와 PGL나, 당구의 UMB와 PBA의 다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해결 방법은 단 하나다. 누가 더 크고 확실하게 투어를 끌고 갈 능력이 있느냐는 것.

각 종목의 전통을 끌고 왔던 PGA나 UMB가 스스로 마이너리그가 되는 길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후발 주자인 PGL과 PBA가 정착하려면 상대보다 더 투어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비전과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반면에 선수와 스폰서, 팬 등 기득권을 갖고 있는 PGA나 UMB는 체재의 변화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앞서 PGL의 유혹을 뿌리친 매킬로이는 “PGL의 아이디어가 PGA 투어를 발전시키는 데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PGA 투어의 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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