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의원, 1년 만에 경기인등록규정 변경하면 된다는 집행부 의견 강하게 비판

"이제 와서 손바닥 뒤집듯이 ‘정관 새로 만들면 되지, 그러고 서로 합쳐서 선수 이중등록을 하면 되지’ 지금 이 얘기를 선수나 심판들이 현장에서 들었으면 피눈물이 났을 거 같아요. ‘아, 저기 있는 나으리들 진짜 힘 세네’

요즘 또 당구계는 한참 시끄럽습니다. 지난 99년에 처음 당구계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고 올해까지 22년을 지내면서 최근 한 3년만큼 온 동네가 들썩거렸던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은 남삼현 회장이 집행부를 꾸린 2016년 9월 이후 지금까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번 분란이 벌어지면서 안팎으로 시달렸습니다. 항상 바람 잘 날 없는 당구계였지만, 남 회장 재임 기간에는 유독 시끄럽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당구계에 처음 들어왔던 99년에 선배 기자를 따라서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있던 대한스포츠당구협회(당구연맹의 전신) 사무실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임원들이 저지른 비리 문제로 선수와 집행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 ‘XXX 회장 탄핵’, ‘전무이사 물러나라’, ‘비리자는 자폭하라’ 등과 같은 과격한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들이 주변에 널려 있었습니다. 당구계에 대한 첫인상은 이렇게 꽤 험악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회의장에서 임원, 대의원들의 충돌이 일어나 의자가 날아다니고 몸싸움을 벌이던 모습입니다. 한 임원은 선배 기자의 카메라를 빼앗으려고 달려들어서 멱살을 잡기도 했는데, 적잖게 충격적이었습니다. 가끔 9시 뉴스를 보면서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장면이 나오면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혀나 차곤 했는데, 실제 회의 중에 집단적인 충돌이 일어나는 현장에 있어 보니 ‘아, 이게 바로 실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 당구계는 많이 성숙해졌습니다. 아무리 시끄러운 일이 벌어져도 목소리만 좀 커질 뿐이지 22년 전처럼 주먹을 쓰거나 집기를 집어 던지는 일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성숙해진 당구계 회의 문화가 참 보기 좋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당구연맹 임시총회가 열린 회의장에서는 오랜만에 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언뜻 기억에 22년 전 그 회의장에 있었던 임원분이 신기하게도 2020년 총회장에서도 똑같이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의자가 날아다니거나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간만에 생동감 있는 장면이 그때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달 편집장 칼럼에서는 사실 이 얘기를 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3월 13일 잠깐 소란이 있었던 그 임시총회에서 한 대의원이 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선수와 심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22년 기자 생활 기억에 선수들이 ‘강자’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예전부터 당구계에서 ‘강자’는 항상 회의장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어깨에 힘을 주던 임원들이었지 선수들은 아니었습니다. 잠깐 선수들에게 힘이 들어갔던 때가 있기는 했습니다. 고 이상천 선수가 미국에서 돌아와 당구연맹의 회장을 맡으셨던 짧은 기간입니다. 당구선수가 처음 대접을 받기 시작한 때가 바로 그 시기부터였습니다. 그때를 아는 선수들에게는 그 시절이 참 그리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 임시총회에서 그 대의원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걸 참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선수와 심판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게요. 몇 년 전에 모 심판은 자기 생각을 칼럼으로 썼다고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작년에는 PBA가 생기면서 규정을 내세워서 3년간 돌아오지 못할 징계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손바닥 뒤집듯이 ‘정관 새로 만들면 되지, 그러고 서로 합쳐서 선수 이중등록을 하면 되지’ 지금 이 얘기를 선수나 심판들이 현장에서 들었으면 피눈물이 났을 거 같아요. ‘아, 저기 있는 나으리들 진짜 힘 세네’…”

당시 총회장에서는 PBA와 맺은 상생협약으로 수반되는 규정 개정이 과연 대의원 손을 거쳐야 되는지, 아니면 집행부와 이사회가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었습니다. 남삼현 회장과 나근주 처장은 “규정 개정은 이사회 권한이지만 대의원들 의견을 반영해 줄 수 있다”라는 입장이었고, 몇몇 대의원들은 “선수 이중등록은 대의원 권한으로 해야 된다”라는 주장을 펼치며 대립각을 세우는 중이었습니다. 한참을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 대의원이 저 말을 하자 일순간에 정적이 흘렀습니다. 선수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연맹의 기준과 규정 변경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간만에 속 시원한 쓴소리를 해준 듯합니다. 

과거보다는 회의 문화가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당구연맹 회의 석상에서는 공적인 발언을 사적 목적에 따라 편중되게 하는 나쁜 경향이 있습니다. 임원과 대의원은 항상 약자인 선수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책임질 수 있는 발언과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회의 석상에서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실명과 의사발언 전체를 가급적이면 모두 공개하겠습니다. 이제, 비판을 감당하지 못할 말은 웬만하면 하지 마시기를 당부합니다.

그날 회의장에서 저 대의원의 말은 가슴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꼭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현장에 계셨던 분들 중에 반성할 분들은 반성하시고, 선수들은 위로받고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말 어려운 시기입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더 강조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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