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경기인들, 88년 7월 19일 "범경기인만의 단체 절실히 필요" 주장

체육부에 정식 가맹 목표로 범경기인 단체 '대한당구원' 설립하도록 뜻 모아

당구協, 스포츠 경기종목 채택 위해 '100만인 서명운동 전개'하기도

<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빌리어즈>가 지난 35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해 김기제 발행인의 집필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김영재 회장.   빌리어즈 자료사진
범경기인 단체 '대한당구원' 설립을 주장했던 김영재 회장. 빌리어즈 자료사진

◼︎ 88년 7월 한국당구인원로회 회원들과 중진 경기인들 25명이 ‘대한당구원’ 설립 결의

1988년 무렵에는 당구가 장애인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있고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에 가맹되어 세계스포츠당구연맹(WCBS)을 통하여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현실임에도 한국 당구 경기인들은 통합된 경기단체조차 없이 당구장 경영자들의 직능단체인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선수국 산하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따라서 당구 경기인들 사이에서는 당구가 정식으로 스포츠 종목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첫 단계로 당구 경기인들만의 단체를 조직하여 체육부에 가맹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진작에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1988년 7월 19일 서울 고척동의 영재당구장(한국당구회 김영재 회장 경영)에서 개최된 한국당구인원로회(회장 이한종) 제39회 월례당구회 겸 총회에서 이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이날 모임에는 한국당구인원로회 11명의 기존 회원 외에 신입 회원 등 모두 25명의 한국 당구계 원로와 중진 경기인들이 참석했다.

그 면모를 보면, 이한종, 조동성, 강두석, 김영재, 김한기, 김시창, 백우종, 김문장, 양귀문, 유한상, 김상호, 김수린, 임명선, 강문구, 최인식, 박정언, 최석영, 박용철, 최기창, 조성철 등이다.

이한종 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회의에서 김문장이 경기인 단체 구성의 필요성에 대한 제안 설명을 다음과 같이 했다. 

"당구가 당연히 스포츠로 인정되어 체육부 산하에 가입되어 있어야 함에도 아직도 그것이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은 그것을 책임지고 추진해 나갈 경기인들의 통합된 단체가 없었기 때문이며, 이를 위해서는 경기인들의 결집된 힘을 나타낼 수 있는 어떤 확고한 구심체가 필요하다. 현재 대한당구협회가 보건사회부 산하에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구업을 영위하는 업자들의 단체이지 경기인을 위한 단체는 아니다. 따라서 그 단체에 우리 머리를 깎아달라고 할 수 없는 일이므로 우리 경기인의 사활이 걸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개척하기 위해서는 비록 때늦은 감은 있으나 지금부터라도 우리 경기인의 목적 달성을 실현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하겠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경기인들의 모임인 한국당구인원로회나 한국당구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하나의 통합된 단체를 조직, 명실공히 당구경기인의 모체를 이룩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이 제안 설명에 대해 대한당구협회 경기분과위원회에 관계하고 있는 양귀문은 당시 대한당구협회 내에 경기분과위원회가 있고 박병문을 부장으로 하여 15명의 선수가 등록되어 있는 현시점에서 구태여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이원화하는 것보다는 그 창구를 이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는 의견이 있었지만, 참석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한국당구회 김영재 회장은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대한당구협회 신임 임영렬 회장은 나와 같이 한국당구회를 이끌던 부회장으로서, 협회 회장 취임 후 상면하여 선수들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잘해 나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임 회장은 서로 상의해서 잘해 나가자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대한당구협회의 지부에서 각 업소에 당구경기인들의 등록을 적극 종용하라는 공문이 하달되었는데, 등록하지 않은 선수들은 각종 당구대회에 참가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선수들에 관한 문제는 나하고 상의해서 하겠다던 임 회장이 적어도 경기인에 관한 문제는 나에게 귀띔이라도 하고 이런 방침을 결정해야 했을 터인데 참으로 섭섭한 처사일 뿐더러 대한당구협회가 선수등록 운운하는 것은 언어도단의 이야기다"

김영재 회장의 발언에 대한 참석자들의 후속 발언을 요약하면, 대한당구협회는 업자 단체로서 선수 등록을 강요해서는 안되며, 승단제와 같은 기술적인 문제도 그들의 분야가 아닐 뿐더러 다만 협회가 주관하는 당구대회를 추진하는 데 필요한 범위 내에서 경기단체의 협조 아래 경기실무적으로만 선수에 관한 사항을 거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당구경기인에 관한 문제는 경기인 스스로 타결해 나갈 수 있는 범경기인의 모임체가 이 시점에서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김영재 회장은 현역 선수들의 모임체인 한국당구회를 해체하고서라도 한국당구인원로회와 합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새로 발족한 모임의 명칭을 가칭 ‘대한당구원’으로 결정하고 발기인으로 강두석, 조동성, 최석영, 김상호, 김영재, 김문장, 유한상 등을 선임하고 이한종이 옵서버 자격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보름 뒤인 1988년 8월 5일에 개최된 정기총회에서 임원 개선(이한종 회장 유임) 안건이 다루어진 다음, ‘대한당구원’의 추진방향과 진로가 진지하게 논의되었으며 발기인 7명을 기초추진위원 체제로 바꾸어 해나가기로 했다.
 

당구 종목 스포츠화를 목표로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에서 주도한 100만인 서명운동.   빌리어즈 자료사진
당구 종목 스포츠화를 목표로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에서 주도한 100만인 서명운동. 빌리어즈 자료사진

◼ 대한당구협회 김명석 부회장 주도로 ‘100만인 서명운동’ 전개  

군사정부 시절인 1962년도에 사회정화 시책의 일환으로 당구장을 행정적으로 통괄하기 위해 보건사회부 산하에 「유기장법」의 적용을 받는 환경위생협회를 설립하고 그 한 조직으로서 당구분과위원회를 둔 것이 법정단체 출발의 시초였다.

이후 뜻있는 당구인들은 태생이 스포츠 경기인 당구의 위상을 되찾자는 주장을 계속 해왔다. 그러나 한번 잘못 씌워진 굴레를 벗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구분과위원회가 1964년에 대한빌리아드협회라는 사단법인체로 등록하고 이어 (사)대한당구협회로 개칭한 이후에도 열망은 있었으나 구체적인 공론이나 행동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협회가 주최・주관한 한일친선당구대회와 세계3쿠션선수권대회 아시아대표 결정전 등을 통해 세계 당구의 흐름을 알게 됨으로써 80년대에 들어와서는 당구의 스포츠화에 대한 열망이 더욱 높아졌다.

대한당구협회 지회 가운데서는 부산시당구협회가 가장 먼저 회원들과 당구 동호인들의 서명을 받아 1987년 1월에 국회에 당구 종목의 스포츠화를 위한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협회 중앙회 선수담당 부회장과 동대문지회장을 맡고 있는 김명석이 당구의 스포츠화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지회의 부가가치세 신고대행 때 명부를 만들어 연명으로 서명을 꾸준히 받았다. 김명석은 경기인 출신으로서 한일친선당구대회 때는 국가대표로 활약하기도 했고, 선수단체인 대한당구경기연맹(회장 양귀문)의 부회장을 여러 해 동안 역임하면서 당구가 스포츠 경기종목으로 돼야 한다는 지론을 견지하며 이를 누구보다도 앞장 서 실천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구협회 임원 중에는 당구 종목이 스포츠로 인정되는 경우, 당구장의 난립과 요금 파동 그리고 당구협회의 당구장 단속권이 무력화된다는 이유로 현상 유지를 바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 대한당구협회의 방침으로는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했던 대한당구협회 김명석 선수담당 부회장.  빌리어즈 자료사진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했던 대한당구협회 김명석 선수담당 부회장. 빌리어즈 자료사진

하지만 88 서울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것을 계기로 당구의 스포츠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져, 1989년 연초 당구협회 시무식에 참석했던 재경 서울지회장과 협회 임원들이 ‘100만인 서명운동’을 협회의 공식사업으로 채택하고 회장 이름으로 전국 각 지회에 취지문이 발송되었다.

그렇지만 부산당구협회에서 국회에 제출한 ‘당구에 대한 경기종목 지정에 대한 청원’이 1988년 1월 27일에 문교공부위원회에서 결의되어 1989년 3월 31일자로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로 공포되었고, 5월 9일에 시행령안이 입법 예고되어 당구장업이 신고체육시설업으로 확정됨으로써 당구 역사 이래 최초의 스포츠화의 길에 들어서게 되자 대한당구협회의 ‘100만인 서명운동’은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운동의 과정을 통해 한국 당구가 스포츠 종목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영원히 기록될 일이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저작권자 © 빌리어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