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드래곤프로모션 투어, KBF 반대로 막 내린 이후 포켓볼의 '급격한 쇠퇴'

13년 만에 MBC스포츠플러스에서 TV 이벤트 대회 열어... 포켓볼 선수 vs KBF 생존권 논란

13년을 침묵한 포켓볼 선수들에게 제명을 빌미로 겁박할 수 있을까

캐롬과 포켓볼, 스누커, 잉글리시빌리어드 등 대표적인 4가지 종목을 통틀어 ‘당구(Billiards)’라고 부른다. 국내에서는 당구를 4구와 3쿠션을 칭하는 캐롬 종목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사실 ‘당구’라는 단어는 앞서 말한 4가지 종목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한국 당구는 태생부터 지금까지 140여 년의 긴 역사 동안 캐롬 종목이 주류를 이루었다.

물론, 19세기 개항과 함께 캐롬과 포켓볼이 모두 국내에 들어왔으나, 유독 한국 사람들은 캐롬을 좋아했고 더 빠르게 더 많이 보급되었다. 여러 사람이 한 번에 경기할 수 있는 방식이 보급된 캐롬에 비해 포켓볼은 다수의 인원이 한 당구대에서 큐를 잡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캐롬보다 대중성이 떨어졌던 것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된다.

국내에서 포켓볼은 보급도 느리고 파급력도 미미했지만, 세계적인 추세는 달랐다. 당구계에서는 과거나 지금이나 세계 당구의 시장은 포켓볼이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본다. 당구 종목 중에서 포켓볼 외에 캐롬과 스누커, 잉글리시빌리어드 등은 당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소수의 종목이다.

전통적이거나 지역적인 영향으로 스누커가 오래도록 영국을 중심으로 지속되어 오면서 연 200억원 대의 상금이 걸린 프로를 출범시켰지만, 세계 시장에서 당구를 대표하는 종목은 포켓볼이라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캐롬 종목의 글로벌 프로 투어를 표방하는 PBA가 출범했다. 캐롬 종목의 선두주자인 한국을 중심으로 ‘당구 한류’를 외치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 전 세계에 캐롬 3쿠션을 포켓볼처럼 보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에 대해서 필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PBA 핵심 관계자는 “PBA는 비록 캐롬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포켓볼로 세계 당구 시장에 큰 변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포켓볼의 부흥이 새로운 당구 붐의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다.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에 고르게 퍼져 있는 인프라가 가장 크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 방식으로 인해 젊은 선수층을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하는 기본적인 프로화 조건을 비롯해 방송, 관중, 스폰서 등 여러 시스템과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포켓볼의 가능성을 여전히 크게 보고 있다. 다만, 포켓볼은 스포츠보다는 레저라는 개념이 누적된 인식과 이미 커질만큼 커진 레저 시장에 변화가 일어나기 어려운 부분이 걸림돌이 되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07년 드래곤프로모션에서 주최한 포켓볼 투어에 출전한 김가영과 차유람.   빌리어즈 자료사진
2007년 드래곤프로모션에서 주최한 포켓볼 투어에 출전한 김가영과 차유람. 빌리어즈 자료사진

포켓볼의 프로화 시도는 십수 년 동안 미국에서 여러 차례 있었다. 지금의 PBA처럼 전문화된 집단이 아닌 선수들 중심으로 끌고 갔기 때문에 마케팅이 부족했고, 스포츠 전문 채널인 ESPN의 전파를 타고도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에서 2007년경에 시도되었던 드래곤프로모션의 포켓볼 투어 이벤트가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미국에 본사가 있는 드래곤프로모션은 많은 자금을 투자해 한국에서 포켓볼 프로화 투어를 시도했다. KBF의 반대에 부딪혀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차유람을 당구 스타로 만드는 등 포켓볼을 크게 알린 성과를 만들었다.

지금도 많은 당구인들이 공감하는 부분은, 당시에 KBF가 연맹의 규정과 생존권을 내세워 선수들의 투어 출전을 막지 않았다면 포켓볼 종목이 지금처럼 긴 암흑기를 걷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과거 당구 단체들이 선수들의 머리 숫자에 의해 연맹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역사를 거듭해왔기 때문에 KBF 입장에서는 드래곤프로모션에 선수를 빼앗기는 상황을 견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드래곤프로모션이 한국에서 성공을 했다면, 이를 기폭제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가 포켓볼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너무 아쉽다.

과거는 그렇다 치고, 문제는 그 이후다. 드래곤프로모션 이후 한국에서 포켓볼은 급격하게 쇠락했다. 이렇게까지 망가질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포켓볼은 추락했다. 상대적으로 주류였던 캐롬에는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고, 그럴수록 캐롬 중심의 시장이 더 견고해지면서 포켓볼은 완전히 죽었다. 13년 동안 누적된 포켓볼의 현재 모습은 심각한 수준이다. 과연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많은 당구인들이 걱정하는 부분이다.

13년의 긴 세월 동안 KBF는 사실상 포켓볼을 방치했다. 이것은 포켓볼이 망가진 가장 큰 이유다. 1년에 몇 차례 풀투어를 개최하는 것으로 겨우 선수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수준으로 종목을 끌고 갔다. 아시안게임에 걸렸던 당구 종목의 금메달 10개 중 가장 많은 4개가 포켓볼에 걸려 있어도 금메달 1개 걸린 캐롬 종목이 더 우대를 받았다. 그러면서 포켓볼 선수들은 솔직히 KBF를 떠나서 따로 협회를 만들고 싶어 할 정도였다. 그리고 KBF 산하에서 포켓볼은 희망이 없다는 것은 지금 2020년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상태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포켓볼이 독립을 결정해도 할 말이 없다. 지금까지 13년을 기다린 포켓볼 선수들에게 과연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까. 무려 나이 13살을 더하는 동안 선수들은 꿈을 잃었고, 그마저 남은 선수들은 반포기 상태나 다름없다. 포켓볼 선수들이 뭉쳐서 PBA처럼 프로협회를 따로 만들고 과거 드래곤프로모션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마케팅팀을 붙여 종목을 발전시키는 것이 포켓볼은 현재 유일한 생존의 대안이다.

2007년 한국에서 열린 드래곤프로모션 포켓볼 투어에서 자넷 리(미국)가 경기하는 장면.   빌리어즈 자료사진
2007년 한국에서 열린 드래곤프로모션 포켓볼 투어에서 자넷 리(미국)가 경기하는 장면. 빌리어즈 자료사진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당구 미디어기업 파이브앤식스가 MBC스포츠플러스와 손잡고 포켓볼 이벤트 경기를 개최한다는 것. 드래곤프로모션 이후 13년 만에 선수들은 대회다운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다. 그런데 이 대회 출전 문제를 두고, 다시 KBF의 규정과 생존권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자포자기 상태였던 포켓볼 선수들에게는 13년 만에 찾아온 기회인데, KBF에서는 ‘제명 카드’가 흘러나오고 있다. 참 지겹고 씁쓸한 일이다. 과연 포켓볼 선수들의 생존권보다 KBF의 생존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더군다나 사실상 집행부 기능도 마비된 채 몇 달 후 회장 선거 때까지 표류 중인 KBF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남삼현 회장은 사퇴서를 던진 지 오래고, 이사회는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다. 그런데 과연 선수들을 누가, 어떻게 제명할 수 있나. 어디서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인지 대의원들에게 확인을 해봤지만, 대의원들 의견은 “이벤트 대회 한번 나가는데 무슨 제명을 하느냐”라는 답변이 대부분이다.

PBA 상생 문제로 사퇴서를 던졌던 남삼현 회장은 사퇴가 번복되었다 해도 다음 회장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선거규정에 따라 불과 얼마 뒤면 직무가 정지된다. 선수 제명을 논의할 수 있는 스포츠공정위원회도 임기가 불과 2달여 남은 상황에서 이런 중대한 논의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징계를 한다고 해도 다음 집행부에서나 논의해야 하는 부분이다.

오랫동안 소외되었던 포켓볼 선수에게 이번 MBC 이벤트는 당구 팬과 스폰서들 앞에 큐를 잡고 당당하게 설 좋은 기회다. 어린 선수들은 과거 차유람이 그랬던 것처럼 날개를 달고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일생의 기회이고, 13년 동안 누르고 참았던 선배 선수들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위안의 무대다.

이번 MBC 이벤트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당구계에 있는 누구도 결코 반대하고 박탈할 수 없는 포켓볼 선수들의 소중한 권리다. 그 최소한의 권리에 대해 규정을 빌미로 선수들을 겁박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떤 규정이 있더라도, 누가 뭐라 해도 포켓볼 선수들은 이번 MBC 대회에 출전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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