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개항과 동시에 한국에 들어온 당구... 프로 종목 중에서 축구 다음으로 전파 빨라

프로 각 종목 효시는 축구 1882년, 당구 1883년, 골프 1900년, 야구·농구 105년, 배구 1915년 등

당구와 비슷한 종목인 볼링은 한국전쟁 이후 국내 전해져... 배드민턴은 해방 후 국내 보급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한국에 들어온 당구는 왕실에 당구대가 설치되는 것은 물론 각종 신문에 광고가 게재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당시 창덕궁 인정전 동행각에 설치되었던 옥돌대와 당구 관련 신문 광고.   빌리어즈 자료사진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한국에 들어온 당구는 왕실에 당구대가 설치되는 것은 물론 각종 신문에 광고가 게재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당시 창덕궁 인정전 동행각에 설치되었던 옥돌대와 당구 관련 신문 광고. 빌리어즈 자료사진

한국 당구의 역사는 무려 137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항이 개항했던 1883년 이후 당구대가 수입되면서 처음 당구가 국내에 도입된 것을 효시로 본다.

이러한 당구의 역사는 프로 종목 중에서도 축구 다음으로 빠르다. 축구는 1882년 인천항에 정박한 영국 국함 ‘플라잉 호스호’ 승무원들이 인천 사람들에게 축구를 전해준 것을 정설로 여기고 있다.

당구대와 큐 등 장비가 필요했던 당구보다 공 하나로 경기하는 축구는 전파가 쉬웠기 때문에 개항 이전에 국내에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

야구와 농구는 1905년에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회원들에게 처음 가르친 것이 시초이며, 배구는 1915년 처음 국내에 전해졌다.

골프는 1900년에 정부의 세관 관리로 고용된 영국인들이 원산 바닷가에 있는 세관 구내에 6홀 코스를 만들어 경기한 것이 종목의 효시다.

그 밖에 당구와 비슷한 종목 중 볼링은 한국전쟁 직후 미군을 통해 전해졌고, 배드민턴도 해방 후 국내에 보급되었다.

이러한 종목의 효시를 볼 때, 당구가 개항과 동시에 어느 종목보다 빠르게 보급되었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라는 것을 방증한다.

당구는 운동과 여가라는 두 가지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 그만큼 효율이 높은 종목이고, 따라서 유저의 범위도 매우 넓다.

또한, 서양에서 포켓볼 종목이 성행할 수 있게 만들었던 ‘펍’이나 국내에서 ‘구락부’라고 불렸던 당구의 클럽 시스템은 인간의 삶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에 접근성도 뛰어났다.

물론,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스포츠와 레저의 사이에서 오랜 과도기를 거치는 등 부침을 겪기는 했지만, 시의적절하게 프로 종목으로 정착되면서 완전한 스포츠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처럼 당구는 지난 134년의 역사 속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종목이다.

오랜 시간 스포츠화의 과정을 거쳐 당구를 치는 환경이 달라지면서 탄탄한 인프라가 구축되었고, 우수한 접근성과 더불어 미디어 효과가 성공적으로 접목되면서 날개를 달아 최근에는 가장 각광 받는 스포츠로 주목을 받고 있다.

134년의 세월 동안 쌓인 긴 역사를 기반으로 단단하게 성장한 당구의 앞날은 더 밝다. 당구는 엘리트의 프로화, 아마추어 디비전 시스템 구축, 산업의 개혁과 성장 등 호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당구가 어느 종목보다도 앞서 국내에 도입된 것처럼 미래에도 그 효시의 가치를 이어받아 스포츠를 선도하는 종목으로 발전하게 되길 기대한다.
 

<빌리어즈> 김도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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