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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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어즈=김민영 기자] 프로당구협회(PBA)가 발족하고 프로당구 투어가 생기면서 가장 큰 변화는 여자 3쿠션 선수들에 대한 주목이다. LPBA 선수들은 때로는 아름다운 외모로, 때로는 남자 선수 못지않은 실력으로 당구 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되었다.

그중 이미래(26, TS샴푸)는 단연 실력으로 지난 시즌 LPBA 투어를 평정하며 최고의 여자 3쿠션 선수로 떠올랐다. 물론 LPBA 첫 우승 전까지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이후 제대로 프로당구 투어에 적응한 이미래는 투어 3연승과 4번의 우승으로 LPBA 최다 우승자에 이름을 올렸다.

화보 촬영장에서 만난 이미래는 대회장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냉철한 카리스마로 당구대 앞이 아닌, 소녀 같은 상큼 발랄한 미소로 카메라 앞에 선 이미래의 모습과 그녀가 들려주는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어 보자. 

 

지난 시즌 동안 3연승을 올리고 LPBA 최다 우승자가 되었다. 이렇게 갑자기 많은 우승을 할 수 있을 줄 기대했나?

그건 정말 나도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다. 아마도 그동안 고생했는데, 앞으로 더 고생하라고 주신 것 같다. 

 

어느 대회에서 우승하고 가장 기뻤나? 

프로로 넘어와서 처음 우승했던 메디힐 챔피언십이 진짜 너무 기뻤다. 메디힐 우승은 진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대한당구연맹에서 거두었던 성과들은 전부 부모님의 열정과 열성으로 만들어주신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당시에 나는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기계적으로 했을 뿐이지 정말 내 영혼은 1도 들어가지 있지 않은 기록이었다. 

반면, 메디힐 우승은 부모님에게 일절 건들지 마시라고 하고, 정말 나 혼자의 힘으로 해냈다. 가뜩이나 성적이 안 나도 너무 안 나던 시기에 이룬 거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우승하고 처음으로 울었다. 그동안 우승했다고 기뻐서 운 적이 없었는데, 처음이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연달아 3번 우승한 것보다 그때 첫 우승이 더 감격스러웠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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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다. 그전에 대한당구연맹에서도 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여자 선수 중에 톱 랭커였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프로에 오기 전까지 나는 당구가 너무 하기 싫었다. 어린 나이에 내 선택이 아닌 부모님의 선택으로 당구를 처음 시작했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당구를 안 한다고 했을 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항도 한 번 못 해 보고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일 뿐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4구 대회에 나오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본인이 하고 싶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나 말고, 아빠가 당구를 너무 좋아하셨다. 아빠랑 엄마가 같이 당구를 배우러 아카데미에 다니실 정도였다. 그때 오빠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당구를 배웠고 내가 5살이었는데, 아마 나도 데리고 다니셨던 것 같다. 너무 어려서 기억에는 없지만. 

오빠가 당구를 그만두고 내가 오빠 대신 당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게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 나는 검도를 배우다가 당구를 치면서 검도를 그만두었다. 오히려 검도로 초등부 금메달은 딴 적은 있는데 6학년 때부터 당구대회를 나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막 우승을 하고 그러지는 못했다. 

 

왜 당구가 싫었나?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하기 싫어했던 거 같다. 학교 끝나면 엄마가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당구장 데려가서 12시 넘어서까지 공만 쳤다. 또 집에서 잠만 자고 다시 학교 갔다가 당구장 가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어린 나이에 친구들이랑 놀지도 못하고 아저씨들만 있는 당구장 가는 게 너무 싫었다. 그때는 당구장에서 담배도 피우던 때라 그것도 너무 싫고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 

성적이 나고 이런 걸 떠나서 하기 싫은 애를 억지로 붙잡고 시키니까 계속 더 싫어졌던 것 같다. 당구를 하면 할수록 내가 하고 싶은 건 점점 더 할 수 없게 되고 쉬는 날도 없고 방학 때는 더 힘들었다.  

 

그렇게 싫었던 당구를 선수까지 하게 된 이유는?

초등학교 5~6학년 때쯤 4구 대회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성적이 안 나오니까 매일 열성적으로 쫓아다니시던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당구장에 안 따라오시기 시작했다. 그래도 엄마가 당구장에 매일 데리고 다니셨는데, 그때 당구장 실장님이 대대로 데려가더니 3쿠션을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내가 9점 놓고 치면서 당구장 사람들을 막 이기니까 아버지가 그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오셨다. 그게 6학년 때였고, 중학교 입학식 전에 나간 3쿠션 대회에서 3등을 했다. 그러면서 중1 때부터 본격적으로 3쿠션으로 치기 시작했고 당구선수의 길로 자연스럽게 접어들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유일한 당구 스승이자 코치였나?

처음에는 3쿠션도 아버지가 가르쳐 주셨다. 지금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부모님의 열성 때문이다. 당구선수도 아닌 아버지가 혼자 시스템을 연구하셔서 그 커리큘럼으로 나를 가르치셨다. 하지만 20점도 안 되는 아빠가 가르쳐 준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좀 무시했다. 결국 아버지 생각에 국내에서 가장 잘 치는 선수가 이충복 선수라고 생각해서 이충복 선수한테 중학교 1학년 때 1년 정도 배웠다. 

그런데 사실 그때 배운 건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이충복 선수가 아빠한테 "쟤는 궁금한 것도 없고, 열정도 없다"고 할 정도였다. 나중에 대학교 가서 이충복 선수를 다시 찾아갔다. 그때가 부모님과 나를 분리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때부터 기초를 다시 잡았다. 

그러다가 <죽빵전설>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예술구를 쳐야 할 일이 생겨서 김규식 해설위원한테 예술구를 배우다가 6개월간 레슨을 받은 정도가 전부다. 김규식 해설위원한테서 배운 건 시스템 한 가지가 아직도 정확히 기억난다. 아버지가 시스템 책을 통째로 외우게 했는데, 그중에 자주 안 쓰는 시스템은 잊어버리게 된다. 그중 한 가지였다. 이후에도 잘 응용해서 쓰고 있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언제 다시 당구를 마음 잡고 하게 됐나?

고등학교 2학년 때 딱 3년만 더 하고 그만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이것 말고 또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또 다른 뭔가를 이만큼 하려면 또 이만큼의 고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더니 아찔하더라. 그래서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당구를 잘 치고 말고를 떠나서 당구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이미 힘든 지경까지 와 있었다. 

지금도 내가 정말 당구를 좋아서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저 당구장을 벗어나는 순간이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프로로 와서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팬들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실감도 안 났는데, 지금은 나를 너무 좋아해 주시니까 팬분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프로 오기 전까지도 계속 갈등하고 있었던 건가?

마음을 다잡게 된 계기는 남자친구 때문이었다. 이전까지 누구도 당구를 그만두라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는데, 남자친구는 너무 싫으면 그만두라고, 네가 선택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해주면서 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사실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쉬는 날도 없고 탈출구도 없었다.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일주일에 하루는 쉬게 되었고, 오히려 쉬는 날이 생기면서 당구를 칠 때 에너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겨우 당구를 치는 의미를 찾았는데, 또 시련이 왔다. LPBA 월드챔피언십에서 생각지도 못한 논란이 생겼다. 

그것도 이제는 하늘의 뜻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왜 이 시점에?'라는 생각이 들고 억울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

수비에는 공격이 있는 수비와 공격이 없는 수비가 있는데, 그날 그 공은 공격이 있는 수비였다. 내 공에는 공격하면서 수비하는 공들이 되게 많다. 심지어 그날 그 공격은 수비가 안 됐다. 득점에도 실패하고 수비도 안 된 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비성 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잘하는 남자 선수가 똑같은 공을 쳤더라면, 이런 비난을 받았을까? 굳이 내가 SNS에 해명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해명 글을 올리면서 더 일이 커졌다. 

 

그날 그 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다. 

스포츠 선수가 수비를 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다. 복싱에서 가드 올렸다고 욕하는 사람 없고, 축구나 배구에도 수비수가 있다. 스포츠에서 수비는 공격만큼 중요한 요소인데, 당구에서는 수비를 나쁘게 본다. 그런데 수비를 안 하는 당구선수는 없다. 수비를 못 하는 사람은 있어도 수비를 안 하는 사람은 없다. 

수비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비는 선수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선수로서 부끄러운 건 수비한 공을 못 푸는 것, 수비된 공을 풀 방법을 못 찾는 것이다. 포켓볼이나 스누커만 해도 눈에 보이게 수비를 하고 턴을 넘기기도 한다. 유독 3쿠션에서만 이런 부분이 용납 안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그 일 이후로 심리적인 충격을 좀 받은 것 같았다. 

당연히 영향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공을 치면 누가 보고 있는 것 같고, 다 내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았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비난하는 것만 같았다. 

 

결국 가장 중요한 LPBA 월드 챔피언십을 망치고 말았다. 

챔피언십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감이 넘쳤는데, 그 경기 이후 대회장에 나가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경기장에 가기도 싫고 집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팬들이 있고, 또 나를 믿고 후원해주는 회사도 있어서 책임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잘 못 하더라도 할 건 하자라는 생각으로 나갔는데, 역시나... 그 공이랑 비슷한 공만 서도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극복이 되었나?

당시 많은 유명 당구 유투버들이 제 편에서 설명하는 영상을 올려 주셨다. 그게 너무 고맙고 정말 위로가 많이 됐다. 그리고 선수는 공이 잘 맞으면 풀린다. 한동안 고생하다가 최근에 공이 좀 잘 맞으면서 많이 극복이 됐다. 

 

이번 시즌 첫 번째 투어에서 16강까지 갔다. 김가영과 결승전 아닌 결승전을 너무 일찍 치른 감이 있어서 아쉽지는 않았나?

솔직히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이번 시즌 첫 대회가 그때 그 일 이후 첫 대회라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경기장의 이미지만 바꾸고 오자는 생각으로 나갔다. 잘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첫 경기는 진짜 너무 두려웠다. 하지만 그 후부터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프로당구 팀리그 이후 가장 많이 성장한 선수로 이미래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나?

2016년 벨기에 세계선수권대회에 다녀오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당구의 기본적인 원리로 공을 치는 게 가장 쉽다'라는 것. 그때부터 공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아빠한테도 공 알려주지 말라고 하고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그 후에 노력했던 것들이 프로로 와서 빛을 보는 거 같다. 

다만, 팀리그를 하면서 뱅크샷이 정말 많이 늘었다. 개인적인 노력도 했지만, 팀리그를 하면서 선배 선수들의 뱅크샷에 대한 노하우를 많이 배웠다. 지난 5년 동안의 훈련 성과가 이제야 나오고 있고, 그 와중에 남자 선수들에게 그런 팁까지 전수 받으면서 플러스가 된 것 같다. 

 

같은 팀인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와 공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게 원래 내 스타일이다. 예전 경기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내 공이 유럽 선수들과 비슷할 수 있었던 건 아버지 덕분이다. 유튜브도 없던 시절에 유럽에서 열린 월드컵 영상을 전부 다운받아서 출퇴근 길마다 보셨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유럽 선수 스타일의 공을 알려주셨고,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스타일로 공을 치게 된 것 같다. 

 

이제 곧 두 번째 투어가 시작된다.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 특히 소속사인 TS샴푸가 메인 타이틀을 맡았다. 

엄청 부담스럽다. 원래 두 번째 투어가 8월 중순에 잡혀 있었는데, 정말 나가기 싫었다. 공이 너무 안 맞아서 그런 상태로 대회를 나가면 더 안 좋은 영향을 받을 것 같아서 진짜 나가기 싫었다. 다행히도 대회가 연기돼서 리플레시하는 시간을 갖고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그 시간 동안 회복이 많이 된 것 같다. 이번 투어에 정말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TS샴푸 히어로즈가 이번 시즌 팀리그 동안 고전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첫 시즌 때도 처음에는 팀원들이 내 공을 믿어주지 않았다. 왜 공을 그렇게 치냐고 묻곤 했는데, 나는 그렇게 치는 게 편한 공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팀원들이 나를 믿어주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미래는 할 수 있어”라고 믿어주는 게 힘이 많이 됐다.

지금은 새로 영입된 선수가 많아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좀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또 다들 너무 큰 부담을 안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내 몫을 조금 더 잘해주었더라면 팀원들에게 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함이 있는데,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나와 김남수 프로는 원년 멤버인 우리가 잘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고, 새로 들어온 선수들은 챔피언 팀에 들어왔으니 민폐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다 보니 오히려 실력 발휘를 못 하는 것 같다. 평소 연습 때는 진짜 너무 잘하는데, 연습할 때만큼만 치면 진짜 잘할 수 있는데 너무 아쉽다. 후반기 때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니까 서로 믿고 화이팅 했으면 좋겠다. 

 

어떤 당구선수가 되고 싶은가?

현명하게 공을 다루는 선수가 되고 싶다. 공을 편하게, 쉽게 치는 선수. 

 

더 이루고 싶은 것이 있나?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한다. 타이틀은 많이 가졌지만, 실력적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아직 해야 할 것도 너무 많다. 

 

이번 시즌 동안의 목표는?

자신은 있는데 대회장 가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에 섣불리 우승하겠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최선을 다하겠다. 예전에는 절반만 우승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단 한 번이라도 우승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이미래라는 선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

구장에 오시는 손님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되게 잘 웃네" 혹은 "되게 차갑게 봤는데 안그러네" 이런 거다. TV에서 보이는 모습은 대회에서의 모습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경기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경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일부러 말도 안 하고 조금 경직된 모습일 수밖에 없다. 그런 모습만 보고 너무 오해하지 마셨으면 좋겠다.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모든 팬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보니 카메라나 언론에 비치는 나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나를 판단할 텐데, 너무 한 면의 모습만 보고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나를 좋아해 주는 팬들은 고작 그거 보여드렸는데 나를 좋아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좋은 선수뿐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예쁘게 봐주시고, 실수하는 게 있으면 질타보다 조언과 가르침으로 보듬어 주시면 좋겠다. 

 

 

사진=이우성(675스튜디오)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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