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쿠션 주도권의 실체와 전망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차고 넘치며 문화강국으로서의 면모 또한 굳건히 형성되고 있는데, 세계적 대중스포츠의 가능성이 높은 당구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당구 3쿠션 종목의 경우엔 이미 한국이 주도하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지금 전 세계 모든 당구인의 주목을 받으며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당구 3쿠션 주도국이라는 꿈과 같은 이 현실이 과연 지속 가능한가?’라고 냉정히 자문해 보면 아쉽게도 그 전망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나는 천성적으로 지극히 낙관적인 사람이지만, 한국이 당구 3쿠션 종목을 주도하는 현 상황이 어쩌면 이미 정점을 지나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을 수 있다고 느끼고 있다.

첫째 이유는,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주도권이라는 것의 실체가 ‘현재 규모의 세계 당구산업 수준에서 한국이 먼저 양적 팽창을 시작하며 얻은 기회일 뿐’이라서 만일 경제력이 월등한 어떤 나라가 정책적으로 당구를 육성하기 시작하거나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쉽게 주도적 지위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서 그렇고, 둘째 이유는, 이 기회를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데 필수요소인 질적 도약과 구조조정이 상당히 어려운 과제라서 그렇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1950년까지 당구와 골프는 산업 규모가 서로 비슷했으나, 골프가 스트로크 플레이(Stroke Play, 타수 경기)의 현재 종목을 개발하며 1951년에 질적 도약을 거친 덕분에 스스로 대중의 수요를 확대하며 양적 팽창을 거듭함으로써 고급스포츠로서 위상도 확립하고 2000년에 이르러서는 가장 큰 스포츠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와 달리 당구는 안타깝게도 그런 경로를 밟지 못했기에 골프와 비견할만한 발전을 이루지 못했었고.

이 기준으로 비교하자면, 골프는 이렇게 내부적으로 발전동력을 갖춰서 밀고 나가며 주도적으로 성장한 케이스였고 당구는 발전 동력이 외부로부터 형성된 후에 반영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차이가 있다.

2차대전 후 세계 각지에서 경제부흥정책과 개발정책들이 실현되고 1980년대에 냉전체제가 무너져 세계 경제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면서 대중들 삶의 중심이 생존 활동에서 레포츠 활동으로 이동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당구발전의 윤곽이 서서히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는데, 다행히도 한국에서는 베이비부머 세대를 기반으로 당구 붐이 다시 일어나며 다른 나라보다 여건이 일찍 조성될 수 있었다.

어쨌거나 한국은 그 기회를 잘 활용했으며, 그 덕분에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만 보자면 한국이 세계 캐롬 당구의 주인공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되돌아볼 때, 이 기회가 다가올 때까지 길고 길었던 엄동설한의 힘든 시기를 견뎌 낸 당구인들과, 그 기회를 잘 포착하고 구체화시킨 한국 당구인들 모두의 노력과 헌신은 마땅히 높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가 지금 가지게 된 유형 또는 무형의 당구 자산으로는 폭넓은 동호인층과 조직, 탄탄한 선수진, 다양한 경험을 축적한 연맹조직, 전문적으로 당구 프로그램을 송출하는 방송사들, 프로시스템을 시험 가동하고 있는 PBA 등이 있고, 이는 현재 시점으로 다른 어떤 나라에 비교해도 우위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장점들이다.

하지만 앞으로 당구가 점점 더 세계적으로 대중화되고 더 많은 나라에서 동호인이 증가하여 각종 당구대회가 열리고 그러면서 당구산업 규모가 보다 더 확대되어 세계 각지에서 많은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면, 그때 3쿠션 종목을 주도할 단위들의 역학관계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형성될까? 그때도 변함없이 지금과 똑같기는 어려울 테고 십중팔구 지금과는 많이 다른 국면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당구가 돈이 된다’는 게 확인되어 여기저기에서 본격적인 대규모 투자가 벌어질 때 우리가 과연 미국이나 중국을 이겨낼 수 있을까, 터키나 독일 또는 일본 그리고 세계캐롬연맹(UMB)을 좌우해 왔던 EU는?

대회 전경.  빌리어즈 자료사진
당구대회 전경. 빌리어즈 자료사진

물론 초기 골프의 맹주였던 영국은 지금도 당당한 골프 주도국의 하나지만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영국이 골프 규칙을 제정하던 왕립골프협회(R&A)라는 원조 조직과 세인트 앤드루스라는 코스가 상징하는 ‘종목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여 우리가 지금 잠시나마 누리고 있는 캐롬당구 주도권의 근거를 냉정히 평하자면, 어쩌면 ‘이것은 매우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사상누각’에 불과할 수 있다.

1) 아직 다른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당구 붐이 일어나기 전에,
2) 3쿠션 종목을 좋아하는 동호인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상태에서,
3) 당구산업의 현재 규모에 비추어 다소 많은 투자가 들어오면서,
4) 다른 나라보다 먼저 당구방송사와 프로시스템까지 시도하는 단계

이것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세계 캐롬 당구 주도권의 정확한 실체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앞으로 당구가 크게 발전한 미래상을 그려보자면 당구가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조연으로 밀려나기 쉬울 것이라는 역설적 예상까지 하게 된다.

당구는 장점이 많아서 앞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종목이다. 우선 당구는 매우 재미있는 종목인 데다, 기후도 날씨도 관계없으며, 낮과 밤도 구별이 없고,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고, 관전하는 것도 직접 행하는 것도 모두 재미있고,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으며, 비용도 부담스럽지 않다.

시간의 문제일 뿐 당구가 세계적 대중스포츠의 최고봉에 오르는 것은 이미 불변으로 정해져 있는 미래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당구가 더욱 발전하여 세계적 대중스포츠로 각광받고 미국이나 중국 또는 유럽에서 당구에 대규모 투자가 유입되는 시대를 상상해 보자.

아마도 프로시스템은 미국이나 유럽연합 중 하나가 주도할 가능성이 높고, 지금은 독점적 지위로 세계대회를 송출하고 있는 우리의 방송사도 그때는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대형 경쟁사들 사이에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계약권을 따느라 분주한 신세가 될 것이며, 용품 시장도 매머드급 제조-유통사가 과점하는 상태가 되어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가 중형급 소비시장으로 전락할 가능성마저 있다.

마음으로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싶지만, 객관적 분석이 이끄는 결론은 당구가 발전할수록 우리의 자리는 변방으로 밀려나는 모습이 떠오르니 더 늦기 전에 어떤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1) 우리가 현재 세계캐롬당구의 중요한 리더인 것 맞다. 자랑스럽게 여기자.

2) 하지만 그건 외부적 환경변화에 대해 우리의 여건이 조금 더 좋았고 우리가 조금 더 일찍 대응한 결과일 뿐이라서 이대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3) 이 상태로 당구가 더 발전하고 세계화된다면 우리는 중형급 소비시장으로 전락할 가능성마저 높다.

4)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 캐롬 당구 주도국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하고 적합한 대책을 찾아서 실천해야 한다.

 


김태석 인천당구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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