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구 공중위생법에 당구장 '유기장업'으로 법적 규제 → 시작 87년 본지 창간 후 법적 규제 해제와 스포츠화 본격화

89년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제정 후 당구장 체육시설로 분류 → 당구장만 '청소년 출입금지' 시행규칙 남아

93년 '청소년 당구장 출입금지'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 → 교육환경보호구역 내 당구장 설치는 불가능

2014년 '당구장설치금지규제철폐대책위' 추진 → 국무조정실 "초등 앞 먼저 해제. 중고교는 금연 후 해제"

2017년 12월 당구장 전면 금연 → 2021년 교육환경보호법 개정, 2022년 3월 시행으로 당구의 모든 법적 규제 철폐

과거 당구는 인식이 좋지 않았다. 국내 당구 환경이 너무 친서민적인 탓에 많은 사람이 당구장을 이용하다 보니 올곧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당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통의 사람이 가볍게 사교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많지 않았던 사회적 환경의 영향도 있었다. 당구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좋은 스포츠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회적, 환경적 원인으로 뜻하지 않은 여러 제약을 받았다. 다소 억울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제약이 법률적인 규제까지 진행된 것이 문제였다. 단순히 이미지가 안 좋은 것이라면 당구선수의 활동을 알리고, 미디어 마케팅을 통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90년대 초반 서울에서는 BWA 3쿠션 당구월드컵이 개최되어 당시 서울방송(SBS)이 TV 중계를 한 바 있다. 보타이를 맨 세계 3쿠션 선수들이 한국을 방문해 당구 경기를 하는 모습이 중계되면서 당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이미지도 크게 달라졌다.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당구장을 법률적으로 규제하는 법이 만들어지면서 스포츠인 당구를 아예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일종의 유해 오락으로 치부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1986년 5월 10일 구 공중위생법에서 당구장을 ‘유기장업’의 범주에 넣고 규제하는 황당한 법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심각한 법률적 제약이 생기면서 당구는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었다.

당구의 태생이 귀족의 스포츠이고 해외에서는 1930년대부터 이미 세계선수권대회가 종목별로 열리는 엄연한 스포츠다. 한국을 대표하는 당구선수들이 자비를 들여가며 세계대회에 출전하고 매년 정기적으로 한일전을 개최하는 등의 스포츠적 활동도 1970년대부터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환경이 좋지 않다는 편견이 쌓이면서 결국에는 법적인 규제까지 받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언젠가 한 당구선수 출신 원로는 그때를 회상하며 “결혼을 위해 상견례를 해야 하는데, 반대가 두려워서 당구선수라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구계 인사들에게는 그만큼 심각한 일이었고,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었다. 당시 당구계를 대표하는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현 대한당구장협회)가 이러한 법적 규제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구협회는 일찌감치 한국전쟁이 끝나고 1년 후인 1954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해 1955년 11월에 당시 이재학 국회부의장이 초대 회장을 맡으면서 정식으로 설립된 단체다. 이후 1961년에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강제로 해체되었다가 보건사회부 산하에 있는 사단법인 대한환경위생협회 당구분과위원회의 관리 감독을 받았고, 1966년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로 재출범하게 되었다.

당구협회는 1972년에 제1회 한일 친선당구대회를 개최하고 1977년에 세계캐롬연맹(UMB)에 정가맹하며 한국 당구의 세계 진출을 위한 문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20년 넘게 많은 당구인들이 쌓아온 이러한 노력은 허무하게도 법적 규제라는 대못으로 돌아왔다. 

이러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지만, 당구계는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 대해 전해 들은 본지 김기제 발행인은 당구인의 목소리를 대변할 당구 전문 언론의 필요성을 느끼고 곧바로 창간을 준비했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았던 때라 '당구'를 주제로 한 언론이 정부의 허가를 받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1987년 2월에 <월간당구(현 월간 빌리어즈)>라는 제호로 국내에 사실상 처음이자 유일한 당구 매체가 탄생할 수 있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1987년 2월 발행된 본지 창간호를 들고 있는 김기제 발행인(왼쪽). 2014년 김기제 발행인이 마지막 당구의 법적 규제를 철폐하기 위해 구성한 '당구장설치금지규제철폐대책위원회'에 참가동의서를 보내온 각 당구계 단체들(오른쪽).  빌리어즈 자료사진

본지는 당구선수를 인터뷰하고 당구대회, 당구장, 문화, 업계 소식 등 당구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내용을 취재해 매월 발행했다. 일정 부수는 당구협회를 통해 당구장에 배포하고,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도록 서점과 가판대 판매를 했다. 그리고 사회 주요 인사들이 당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 주요 부처와 국회, 기업 등에 매월 발송했다. 몇 년 전 안타깝게도 고인이 된 한 당구선수는 언젠가 기자에게 당시 가판대에 꽂혀 있는 <월간당구>를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다.

김기제 발행인은 당구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본지를 창간했기 때문에 일종의 사명감이 컸다고 한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법적 규제의 굴레를 벗어날 방안을 모색하고, 몇몇 당구인들과 의기투합해 하나둘씩 계획했던 것을 실천에 옮겼다. 결국, 유기장업이라는 오명의 굴레가 씌워진 3년 만인 1989년에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골프나 탁구, 수영, 볼링과 같은 종목과 함께 당구장이 체육시설로 분류되게 되었다. 당구가 스포츠라는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받은 가장 첫 번째 사건이었다. 당구장은 현재도 같은 법률에 따라 체육시설로 보호받는다.

만약 당구장이 체육시설로 포함되지 않거나 시기가 더 늦었다면, 이후 서울 당구월드컵 유치와 GAISF 가입, 아시안게임 정식종목 채택 등 모든 당구계의 중요 사건에 줄줄이 문제가 생겨 당구의 스포츠화는 더욱 어려운 길을 걸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문제가 있었다.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때, 다른 종목과 달리 당구장만 “18세 미만자의 출입을 금지하는 문구를 출입문에 부착해야 한다”라는 시행규칙이 존속된 것이다. 당구장이 법적 체육시설이 되기는 했지만, 당구장은 청소년이 여전히 출입을 할 수 없는 ‘성인전용’의 공간이었다.

따라서 당구장과 당구는 여전히 유해하다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 시행규칙을 없애기 위해서는 헌법소원을 해야 했다. 당시 은평구의회 의원이었던 당구협회 박기호 은평지회장이 선두에 서서 수년 동안 위헌소송을 진행했다.

소송은 본지의 증거를 뒷받침으로 마침내 1993년 5월 13일에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5조에 대한 헌법소원(92헌마80)’이 위헌 결정을 받게 되었다. 헌법재판소는 문화체육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관 9인의 전원일치 판결로 18세 미만 청소년들도 자유롭게 당구장에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판결로 당구는 운명이 바뀌었다. 헌법재판소가 내린 A4 용지 10매 분량의 판결문을 보면 “다른 종목에 적용되지 않는 법률로 당구장 업자의 헌법상 직업종사(수행)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하고, 18세 미만 청소년 중 당구에 소질이 있어서 그 방면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내지 행복추구권, 평등권, 복지에 관한 권리를 침해하며, 당구장에 미성년자가 출입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은 시설과 환경을 개선하는 등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 일률적으로 미성년자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다”라고 되어 있다.

당구를 규제하는 법률은 편견에 의해 잘못 만들어졌다는 것을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한 것이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88 서울 장애인올림픽에서 당구가 정식종목인 점과 한체대 교재에 당구가 수록된 점을 들어 오락이 아닌 운동, 즉 스포츠로 인정을 했다. 당구를 두고 오락이냐, 스포츠냐를 따지던 국내 유수 언론에서 헌재의 판결을 두고 여전히 비판이 나오기도 했지만, 당구를 옥죄어 온 법률적 규제에서 탈피하게 되고 스포츠로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가장 큰 문제를 해결했지만, 헌재의 판결에는 숙제와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당구장은 체육시설에 준한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 위헌 결정으로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에 남아 있던 당구장에 대한 규제는 풀렸지만, ‘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당구장은 초중고등학교의 교육환경보호구역 내에 설치가 불가능했다.

이 법은 교육환경보호구역을 법률로 정하고, 학교 앞 200m 내에 노래방, 무도장과 함께 당구장까지 설치를 금지했다. 실질적으로 당구장을 설치하려면 헌재 판결에도 불구하고 제한이 따랐고, 교육환경보호법을 우선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한 법적 다툼도 계속되었지만, 법원 판단은 대부분 당구장을 학교 인근에 설치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지는 당구장 환경이 개선되도록 금연을 유도하는 것과 동시에 국회의 문을 여러 차례 두드렸다. 그럴 때마다 교육환경보호법의 개정은 당구장 금연 문제로 비화되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범당구계적 추진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본지는 2014년에 ‘당구장설치금지규제철폐대책위원회(위원장 김기제)’를 구성하고 대한당구연맹과 국민생활체육 전국당구연합회, 대한당구원로회, 대한당구협회, 한국대학당구연맹, 대한중고당구연맹 등 모든 당구단체의 참가동의서를 받아 그해 5월 8일에 정부에 초중고교 앞 당구장 설치를 금지하는 규제를 철폐해달라고 청원했다.

2014년 8월 7일 국무조정실은 본지에 "초등학교 앞은 우선 해제하고, 중고교 앞은 당구장 금연 후 규제를 풀어 허용하겠다"라고 밝혔다. 2017년 12월 3일(사진 왼쪽)에 당구장은 전면 금연이 되었고, 2021년 9월 24일 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 2022년 3월 25일 개정된 법률 시행 절차를 걸쳐 37년 동안 이루어진 당구에 대한 모든 법적 규제 철폐가 완료되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당구의 마지막 규제로 남아 있던 '교육환경보호구역 내 당구장 설치 금지'(사진 오른쪽). 이 규제는 본지의 요청에 따라 2014년 8월 7일 국무조정실은 "초등학교 앞은 우선 해제하고, 중고교 앞은 당구장 금연 후 규제를 풀어 허용하겠다"라고 결론이 났다. 이후 2017년 12월 3일(사진 왼쪽)에 당구장은 전면 금연이 되었고, 2021년 9월 24일 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 2022년 3월 25일 개정된 법률 시행 절차를 걸쳐 최종 마무리되면서 지난 37년 동안 이루어진 당구에 대한 모든 법적 규제 철폐 활동이 완료되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얼마 후인 8월 7일 국무조정실은 본지에 “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교육환경보호구역 안에서는 당구장 개설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을, 규제를 풀어 허용하겠다”라고 서면으로 답변했다. 당구의 치부로 남아 있던 마지막 법적 규제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다만, 교육부에서는 “초등학교 앞을 우선 해제하고, 중고교는 금연 관련법이 개정된 후 교육환경보호법의 입법 절차를 거치겠다”라고 밝혔다. 당구장 금연은 2년여 진통을 거친 끝에 결국 2017년 12월 3일이 되어서야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교육부의 통보대로 중고등학교 정화구역 내 당구장 설치는 교육환경보호법을 개정해야 하는 마지막 입법 절차가 남아 있었다. 그 과정에서는 국가적으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는 격동의 시기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관련 법의 입법 시기가 조금 늦어져 지난 2021년 9월 24일에 ‘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2022년 3월 25일부로 개정된 법률이 시행되었다. 

1986년부터 2022년까지 37년에 걸친 당구를 규제하는 법률과의 긴 싸움이 마침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법률적 규제가 사라지면서 청소년 클럽리그 운영이 가능해지자 최근 대한체육회는 당구 종목을 유청소년클럽리그(i-League) 신규 종목으로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학교 앞 당구클럽에서 선수 훈련을 하거나 방과후학교와 같은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당구선수 발굴과 육성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어떠한 법률도 당구를 규제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당구를 옥죄어 온 법률적 규제로부터 이제 완전히 벗어났다. 이것은 지난 37년간 본지와 여러 당구인들이 힘을 모아서 이루어낸 가장 값진 결실이다. 스포츠를 규제하는 불합리한 법률에서 출발해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루기 위한 오랜 여정은 마침내 막을 내렸다.

본지는 앞으로도 당구를 치는 환경이 더욱 스포츠에 부합하고, 스포츠 당구와 올바른 문화를 대중에 전달하는 언론 매체의 역할에 충실할 계획이다. 이제부터 당구는 프로 스포츠로 거듭나고 유소년과 클럽시스템 등의 기본 체계를 완전히 구축하는 데에 당구인들의 힘을 모아야 한다.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이제 자유가 된 당구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월간 빌리어즈> 김도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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