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25일, 제2대 당구명인 양귀문 추대식 열어

김문장 13·14대 회장 연임 - 최종수 15대 회장 - 김시창 16대 회장

<한국 당구 130년사 '이슈별 당구사 바로 알기'>는 한국에 당구가 전파된 이후 130년 동안 어떻게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스포츠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칼럼입니다. <월간 빌리어즈>가 지난 35년간 취재한 기사와 수집된 자료, 당사자의 인터뷰에 근거해 김기제 발행인의 집필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1985년 1월 10일 13명의 창립 멤버에 의해 ‘한국당구인동우회’로 발족한 ‘한국당구인원로회’는 초대 이한종 회장을 시작으로 제9대 조동성 회장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1997년 8월 28일 조동성 회장의 1년 임기가 만료되는 정기총회에서 대한체육회 가맹을 위해 당구 단체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산하로 전격 편입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다음 달에 제10대 조행선 회장이 취임하면서 단체명도 ‘한국당구원로회’로 개칭되었다. 

이후 원로회는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산하로 편입되는 사실에 거부감을 가진 회원들이 대한당구선수협회가 대한스포츠당구협회의 통합 대열에서 탈퇴해 재창립하자 ‘대한당구선수협회(KBPA) 시니어부’로 활동하며 제4회까지 매월 1회씩 정기평가전을 실시함으로써 한국당구원로회와 양분되었다. 그러나 1998년 1월 23일 대한스포츠당구협회가 대한체육회에 인정종목으로 가맹되고 방콕아시안게임에 당구종목 선수를 선발해 파견해야 하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한당구선수협회가 대한스포츠당구협회와 재통합을 하게 되었고, 그해 5월 28일 마침내 ‘한국당구원로회-대한당구선수협회 시니어부 통합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원로회의 단일화를 이루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항목에서는 1997년 9월 한국당구원로회(회장 조행선)로 단체명을 바꾼 이후 1998년 8월에 취임한 제11대 양명수 회장의 임기 1년을 거쳐, 1999년 8월 제12대 회장으로 선출된 김문장 회장의 두 번의 연임(제13대, 제14대)에 이은 최종수(제15대), 김시창(제16대) 회장의 임기(2년 3개월)가 끝나는 2005년 7월까지 ‘한국당구원로회’ 8년간의 발자취를 다루고자 한다. 제17대 김명석 회장대에 이르러 한국당구원로회는 ‘대한당구원로회’로 다시 단체명이 바뀌므로 추후에 기술하기로 한다.

제2대 당구명인 양귀문 추대식.  빌리어즈 자료사진
제2대 당구명인 양귀문 추대식. 오른쪽은 후배 선수들이 만든 아치를 통과하는 양귀문.  빌리어즈 자료사진

◼ 제1대 조동성에 이어 3년 6개월 만인 2000년에 제2대 ‘당구명인’으로 양귀문 추대 

제9대 조동성 회장 때부터 연장자순으로 회장을 추대하던 관례를 따라 제10대 조행선과 제11대 양명수가 회장을 역임하고 임기가 끝난 1999년 8월의 정기총회에서는 다시 경선을 통해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껴 김문장이 제12대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그해 11월 30일 경기도 수원의 ‘당구매니아’에서 제155회 ‘한국 시니어 월례대회’가 열렸다. 이날 2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해 3쿠션 부문과 4구 부문으로 나뉘어 경기를 진행했다. 3쿠션 부문은 박병문이 우승, 준우승은 선수생활을 하다가 목회자로 변신한 후 처음 원로회에 참석한 강호산 목사가 차지했고 김문장과 안지수가 공동 3위에 올랐다. 4구 부문에서는 기연호가 우승, 최기환이 준우승, 양명수와 박상준이 공동 3위에 입상했다. 

2000년에 들어와 4월 열린 제160회 월례대회 자리에서는 원로회가 1996년 연말에 ‘제1대 당구명인’으로 조동성을 추대한 후 3년 6개월 동안 제2대 당구명인을 추대하는 행사를 치르지 못한 사실을 공감하고 이를 실행하기로 했다. 명인 초대의 조건으로는 한국 당구계에 끼친 공로와 업적이 크고 인품이 타의 모범이 되며 협동심이 강해 사회적으로 모범이  되는 사람으로, 현재의 당구인 중에는 양귀문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해 그를 제2대 당구명인에 추대하기로 결의했다.

양귀문은 1935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 1972년 시작한 제1회 한일친선당구대회와 제5회 대회(1976년)의 국가대표 선수를 거쳐 제7회(1979년)부터 제10회(1983년) 대회까지 선수단장을 맡았고, 대한당구경기연맹 초대 회장,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경기이사와 선수국장 등을 역임하며 선수 지도와 양성에 공헌했다. 또한, 프로당구를 지향한 대한빌리아드위원회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양귀문빌리아드연구소와 센터를 운영하며 「양귀문 당구교실」 비디오를 출시해 당구 교육에 기여했다.

2000년 5월 25일 초저녁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에 위치한 홀리데이 인 서울호텔에서 한국당구원로회(회장 김문장) 회원을 비롯한 300여 명의 당구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2대 당구명인 양귀문 추대식’이 거행되었다. 명인 영접 순서로 후배들인 김상윤, 김무순, 김종석 선수 등이 당구 큐를 양측에서 들어 아치를 만든 아래로 양귀문 명인이 통과하자 만장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한국당구원로회 김문장 회장의 추대사가 있은 다음 양귀문 명인은 답례사에서 “부족한 저에게 명인이라는 칭호를 주신 원로회 여러분과 당구계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꺼져가고 있는 당구계를 살리기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되는 이런 상황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Q채널을 통해 당구의 보급과 발전을 도모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모두 단결해 당구가 다시 한번 활활 타오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저를 오늘 이 자리에 서게 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이어서 김문장 회장은 제1대 당구명인 조동성 때의 전례대로 양귀문 명인에게 원로회에서 마련한 1만달러 추대금과 함께 (주)한밭 권오철 대표가 제작한 명인 큐를 전달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 원로회는 필자에게 그동안 한국 당구 발전을 위해 언론사로서 노력한 점을 인정해 감사패를 수여했고, 김시창과 이정길 원로는 공로패를,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양태주 회장과 최효달 부회장은 특별공로패를 받았다.

2001년 열린 서일시연합회장배 전국생활체육당구대회 경기 장면.  빌리어즈 자료사진
2001년 4월 29일 열린 제170회 한국시니어당구대회 경기 장면. 빌리어즈 자료사진

◼ 김문장 회장 2회 연임에 이어 2002년 7월에 제15대 최종수 회장 선출 

2000년 8월 30일 서울시 종로구 연지동의 유창선당구장에서 2000년도 정기총회 겸 제163회 한국시니어당구대회가 27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김문장 회장의 1년 임기가 끝나 신임 회장 후보 추천을 받았으나 김문장이 다시 단독 추대되어 제13대 회장에 연임되었다. 정기총회 후 진행된 월례대회는 3쿠션 부문과 4구 부문으로 나뉘어 치러졌다. 15명이 참가한 3쿠션에서는 우승 강호산, 준우승 김용석, 공동 3위 김문장・이선웅이 차지했고, 12명이 참가한 4구에서는 우승 최기환, 준우승 이정길, 공동 3위 정인수・박상준 등이 입상했다. 

제170회 한국시니어당구대회가 2001년 4월 29일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의 세원당구클럽에서 열렸다. 이번 월례대회는 국민생활체육 양천구당구연합회와 대한당구협회 강서・양천지회에서 주관하는 제2회 양천구청장배 생활체육당구대회와 같이 진행되었다. 따라서 대회장에는 원희룡 국회의원을 비롯해 양천구청장, 양천구의회의장, 대한당구협회 강신일 회장, 최동근 총무이사 등이 내빈으로 참석해 대회에 출전한 아마추어 동호인들의 경기를 관전했다. 3쿠션 부문과 4구 부문으로 진행된 월례대회에서, 3쿠션 부문은 우승 박병문, 준우승 김용석, 공동 3위 김천경・양안정, 4구 부문은 우승 이선웅, 준우승 박상준, 공동 3위 박용철・최기환 등이 입상했다.

제175회 한국시니어당구대회가 국민생활체육 서울시당구연합회(회장 김종석) 초청으로 2001년 9월 16일 제1회 서울시연합회장배 국민생활체육당구대회와 함께 아마추어 당구 동호인 7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렸다. 20여 명의 회원이 3쿠션 한 종목으로 진행했는데, 우승 이선웅, 준우승 김문장, 공동 3위 김시창・박병문 등이 차지했다. 

초대 명인 조동성이 2002년 3월 22일 갑작스런 폐암 치료 중 7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혜화전문(동국대 전신) 재학 시에 방용하의 뒤를 이을 재목의 기량을 보유하고, 일본과 만주, 중국까지 당구 원정을 가 국제 감각을 익혔다. 광복 후 1956년 대한당구협회 제1회 전국당구대회 최고조에서 우승, 다음 해 대한당구협회 부산지부 주최 3쿠션부에서 우승했다. 1957년 최초의 선수단체 대한당구선수회 창립에 관여해 부회장을 역임했고, 1972년에 시작된 한일친선당구대회에서는 선수로, 또는 선수단장으로 참여했다. 1970년대에는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부회장 및 선수이사로 활동했다. 대한빌리아드연구회(1972년), 삼구회(1979년), 대한당구선수회(1980년)를 조직해 회장으로 선수 육성에도 기여했다. 저서로 <내가 본 당구사>, <당구입문> 등이 있다.

2002년 4월 30일 제180회 한국시니어당구대회가 제178회와 제179회에 이어 동일한 장소인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의 쉘부르당구클럽에서 열렸다. 20명의 회원이 3쿠션 종목으로 경기를 치러 우승 한익범, 준우승 이흥식, 공동 3위 박원조・안지수 등이 입상했다. 2002년도 정기총회 겸 제182회 한국시니어당구대회가 7월 25일 경기도 산본의 쉘부르당구클럽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총회에서 3년간 한국당구원로회 회장을 맡아 왔던 김문장을 이어 제15대 회장으로 최종수 부회장을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3쿠션 종목으로 진행된 월례대회에서는 우승 안지수, 준우승 양안정, 공동 3위 이홍식・김용석 등이 차지했다. 최종수 회장은 2002년 9월 9일 쉘부르당구클럽에서 열린 제183회 한국시니어당구대회 개회 자리에서 부회장으로 김시창을 지명, 발표했다. 

제8대 김한기 회장이 2003년 3월 27일 신병으로 향년 8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923년 부산에서 출생한 김한기는 부산에 생활 근거를 두고 초창기 한국 당구계를 이끌었던 김창섭, 김정환, 박윤조, 허근 등과 교류하며 전병학이 운영하던 남포동의 초향구락부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특히 제4대 회장을 역임한 강두석과는 부산에서 오랜 교분을 유지하였다. 김한기는 1958년의 한국 3쿠션 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으며, 1974년의 제3회 한일친선당구대회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1981년에는 대한당구회 부산지부 회장을 맡았고 1984년에는 대한당구회 자문위원을 역임하는 등 당구조직에 참여해 조직체계 발전에 공헌했다.

2003년 4월 23일에는 제190회 한국시니어당구대회가 경기도 오산시의 BB당구클럽(대표 강석봉)에서 초청대회로 열렸다. 월례대회는 1개월 전 타계한 김한기 전 회장에 대한 애도의 묵념으로 시작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최종수 회장의 건강 상태가 나빠져 김시창 부회장에게 회장 대행을 맡겼다. 그리고 다음 달 5월 정기총회를 개최해 김시창을 제16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2003년 열린 제193회 한국시니어당구대회. 우측 제일 끝에 김시창 회장.  빌리어즈 자료사진
2003년 열린 원로회장배 전국시니어3쿠션당구대회 기념 사진. 우측 제일 끝에 김시창 회장. 빌리어즈 자료사진

◼ 김시창 회장은 취임 공약을 지켜 제200회 월례대회를 성대히 치르고 재정 자립 기반 만들어 

2003년 7월 10일에는 임시총회를 겸해 제193회 한국시니어당구대회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의 화성당구클럽에서 개최했다. 3쿠션 종목으로 진행된 월례대회에서는 우승 양안정, 준우승 최언보, 공동 3위 강현복・박원조 등이 차지했다. 한국당구원로회는 1985년 1월 10일에 창립한 후 매월 또는 격월로 월례대회(한국시니어당구대회)를 개최해 18년의 전통을 이어 오면서도 아직 한국당구원로회 회장배를 개최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시창 회장은 전임 회장단 및 임원들과 상의한 후 이를 추진, 매년 1회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당구용품생산판매자협회와 대한당구연맹의 후원으로 마침내 2003년 9월 26일 경기도 산본의 화성당구클럽에서 제195회 월례대회를 겸해 제1회 한국당구원로회 회장배를 개최했다. 

이날 30명의 회원이 출전한 가운데 국제식 3쿠션 핸디 경기를 8개조로 편성, 풀리그전을 펼쳐 16강을 선발했다. 16강전부터는 토너먼트로 경기를 진행해 4강을 가린 다음 핸디 적용 없이 다음 달 10월 10일 오산의 BB당구클럽에서 SBS스포츠채널의 TV 녹화 방송대회로 진행했다. 예선전을 치른 결과, 16강에는 김문장(핸디 20점), 박상준(17점), 박용철(17점), 박병문(23점), 김상윤(20점), 김석구(21점), 안지수(25점), 전광웅(23점), 신항균(20점), 최언보(21점), 김용석(23점), 강호산(26점), 이선웅(20점), 이흥식(23점), 정인수(17점), 박원조(23점) 등이 진출했다. 이어서 8강에는 박상준, 박병문, 김석구, 안지수, 최언보, 김용석, 이흥식, 박원조 등이 올랐고 박병문, 김석구, 최언보, 이흥식이 준결승에 진출했다.

2003년 10월 10일 오산의 BB당구클럽에서 SBS스포츠채널의 녹화 경기로 치러진 4강전은 11점 3전 2선승제로 진행되었다. 박병문 대 김석구의 4강전은 박병문이, 이흥식 대 최언보의 4강전은 이흥식이 세트스코어 2-1로 승리하고 결승에 올라갔다. 결승전에서는 박병문이 이흥식을 세트스코어 2-0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자 박병문은 100만원, 준우승자 이흥식은 50만원, 공동 3위 김석구와 최언보는 각 30만원의 상금이 수여되었다. 

김시창 회장은 취임식 때 제200회 기념월례대회를 성대하게 치르겠다고 공약한 대로 2004년 2월 20일 경기도 산본 화성당구클럽에서 우승 상금 150만원, 준우승 100만원, 공동 3위 각 60만원 등 총상금 510만원을 걸고 개최했다. 32명의 회원이 3쿠션 핸디 경기로 8개조로 나뉘어 풀리그를 벌여 각조 1, 2위 등 16강이 본선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렸다. 4강에는 최언보(핸디 21점), 김천경(20점), 양안정(24점), 김용석(24점)이 진출해 최언보와 양안정이 결승전을 치른 결과 양안정이 우승을 차지했으며, 입상자에게는 소정의 상금과 트로피가 수여되었다. 

2004년 11월 28일에는 제209회 월례대회를 전북도지사배 초청 경기로 전주시의 SBC당구장에서 열어 모처럼 한국 당구의 뿌리로서의 원로들의 경기 기량을 지방 당구 동호인들에게 선보였다. 24명의 회원이 국제식 3쿠션 핸디 경기로 진행해 4강에는 최언보(핸디 23점), 전광웅(23점), 이흥식(26점), 신항균(22점)이 올라 최언보와 이흥식이 결승전을 치러 최언보가 우승했다.

제1회 전국시니어오픈선수권대회 겸 제214회 월례대회가 2005년 4월 16, 17일 2일간 개최되었는데, 일본 시니어협회 소속의 회원 4명이 우정 출전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제1회 전국시니어오픈선수권대회 겸 제214회 월례대회가 2005년 4월 16, 17일 2일간 개최되었는데, 일본 시니어협회 소속의 회원 4명이 우정 출전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한국당구원로회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가 제211회 월례대회와 겸해 2005년 1월 20일 경기도 산본의 화성당구클럽에서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는 당시 대한당구연맹 민영길 회장, 박태호 전무이사, 한국당구용품협회 홍광선 회장과 정종명 총무, 국민생활체육당구연합회 임영렬 회장 등 당구계 인사들이 참석해 원로들을 격려했다. 25명의 회원이 국제식 3쿠션 핸디 경기로 펼친 대회에서 박병문(핸디 29점), 신항균(22점), 한익범(23점), 강수만(25점)이 4강에 진출해 박병문과 신항균이 결승전을 치러 박병문이 우승을 차지했다. 박병문은 3개월 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제3회 전일본시니어오픈3쿠션선수권대회에 참가해 고바야시 노부아키와 고모리 준이치에 이어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제1회 전국시니어오픈선수권대회 겸 제214회 정기평가전이 2005년 4월 16, 17일 이틀간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의 화성당구클럽에서 열렸다. 이날 대회에는 회원 21명 외에 일본 시니어협회 소속의 니시오 가쿠 아시아캐롬연맹 회장을 비롯한 4명의 시니어들이 우정 출전했다. 25명이 8개조로 편성돼 국제식 3쿠션 15점 단판 풀리그의 예선전을 펼쳐 1, 2위가 본선에 진출, 20점 단판 토너먼트로 자웅을 가렸다. 4강에는 박원조, 김석구, 최언보, 안지수가 진출해 박원조와 김석구가 결승전을 치렀고, 박원조가 우승했다. 박원조는 경남 마산 출신으로 경남당구선수협회를 창립해 회장을 역임했으며, 지금도 경남당구연맹 회원으로서 월례평가전에 참가하고 있다.

2005년 7월 14일에는 창립 22주년 정기총회가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의 한식당 땅끝마을에서 36명 회원 중 25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특기할 일은 김시창 회장이 선임된 2003년 4월의 제190회 월례회부터 2005년 6월의 제216회 월례회까지 27개월간의 수입・지출에 대한 결산보고가 있었는데, 회비 1647만원, 찬조 등 기타수입 975만원, 회장 찬조 848만원 등 총수입 3470만원에서 제1회 원로회 회장배 당구대회 600만원, 제200회 기념 월례대회 490만원 등의 대회 개최 소요 경비를 포함한 2920만원을 지출하고도 545만원의 시재를 남긴 흑자 재정을 시현했음이 발표되었다. 회장 취임 당시의 재정 제로 상태에서 이만한 종잣돈을 남긴 것은 김시창 회장의 업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김영재 전 회장이 임시의장을 맡은 임원 선출에서는 김명석이 단독 추천되어 임기 2년의 제17대 회장으로 선임되었고 부회장 등의 임원은 신임 회장에게 임명권을 위임했다. 2개월 후인 9월 22일 경기도 산본의 화성당구클럽에서 김명석 회장 취임식이 열렸으며, 부회장 신항균・김석구, 총무 이흥식 등이 지명되었다. 그리고 이날을 기해 한국당구원로회의 단체명을 시대의 여건에 맞춘다는 취지로 ‘대한당구원로회’로 개칭하기로 했다.

 

<월간 빌리어즈> 발행인 김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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