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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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어즈=김민영 기자] 조재호(NH농협카드)가 그토록 바라던 PBA 챔피언 타이틀을 드디어 손에 넣었다. 11번째 도전 만에 이룬 성과다. 물론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21-21시즌 3차 대회인 휴온스 챔피언십과 5차 대회 NH농협카드 챔피언십에서 결승까지 올랐으나 각각 ‘벨기에 듀오’ 에디 레펜스(SK렌터카)와 프레데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에게 막혀 모두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지난 6월 열린 2022-23시즌 개막전인 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터키의 비롤 위마즈(웰컴저축은행)를 세트스코어 4-1로 꺾고 3번째 결승에 오른 조재호는 그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죽어도 준우승은 안 한다’는 각오로 결승에 임했다.  

결승전 상대인 스페인의 다비드 사파타(블루원리조트)는 준결승전에서 프레데릭 쿠드롱에게 세트스코어 1-3으로 밀리다가 4-3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온 ‘저승사자’였다. 사파타보다 더 큰 집중력을 발휘해야 이길 수 있었고, 바람은 현실이 됐다.  

2022-23시즌 개막전 ‘경주 블루원리조트 PBA 챔피언십’의 우승자 조재호를 만나 그날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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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축하한다. 어떤 각오로 결승전에 임했나? 

정말 준우승은 안 한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4강전 때부터 이번에 우승을 못 하면 다시는 우승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아예 질 생각 자체가 없었다. 준결승전 상대인 비롤 위마즈도 쉬운 상대가 아닌데, 4강 시작도 전부터 우승밖에 다른 생각이 아예 없었다.  

이전에도 우승하기 전에 비슷한 생각이나 분위기였나? 

아니다. 여지껏 시합을 하면서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월드컵 때 우승할 때도 이런 마음은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준우승은 싫어, 무조건 우승해야 해!' 이 생각밖에 안들었다.  

그러면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있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무조건 집중해서 이길 거야, 무조건 우승이야’라고 아예 완전히 그쪽으로 꽂히니까 부담감도 없어졌다.

세트스코어 1-1에서 2-1이 됐을 때부터 우승 소감이 떠올랐다. 스스로도 깜짝 놀라서 아직 시합 안 끝났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마지막 1점을 칠 때까지 ‘아직 안 끝났다, 끝까지 열심히 쳐야 돼’라고 계속 되뇌었고, 마지막 1점이 남았을 때 일부러 타임아웃을 부르고 마지막까지 치밀하게 계산했다.  

준결승전에서 다비드 사파타나 프레데릭 쿠드롱 중 누가 올라오길 기대했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쿠드롱이 올라올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쿠드롱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기가 진행될수록 쿠드롱의 샷이 이전 같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 경기에서의 쿠드롱은 쿠드롱답지 않았다.   

사파타도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사파타가 준결승에서 거의 죽다가 살아왔다. 우린 그런 선수를 ‘저승사자’라고 부르는데, 이 경우 다음 경기에서 집중력이 엄청나게 발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려운 경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로 쿠드롱 같은 4대천왕을 이기면 안도감에 살짝 맥이 풀리는 경향이 있다. 그럴 경우 빈틈을 놓치지 않으면 내가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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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내내 쿠드롱의 독주가 대단했다. 투어 3개와 월드챔피언십까지 4개의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면서 ‘누가 과연 쿠드롱을 막을 수 있겠나’ 이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선수들도 위기감을 느꼈다. 쿠드롱을 못 막으면 특히 한국 선수들이 비난을 받게 된다. 지난 시즌 개막전에서 강동궁 선수가 우승한 이후 나머지 대회를 모두 외국 선수들이 우승을 했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는 쿠드롱뿐 아니라 외국 선수들의 우승을 막고 반드시 한국 선수가 우승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4강에 외국 선수 3명에, 한국 선수는 나 혼자라 기댈 데가 없어서 오히려 집중이 더 잘 된 것 같다.  

이번 대회에서 본인만의 공략법이 있었나? 

지난번 쿠드롱과의 결승전에서 뱅킹 잘 쳐서 이겨 놓고 초구에 2점 치고 3점째 공을 갈팡질팡하다가 공을 놓쳤다. 타임아웃을 안 쓴 게 문제였다. 뱅킹을 이긴 상태에서 첫 세트 스타트가 괜찮은 상황인데 3점째 공을 놓치는 바람에 결국 세트스코어 1-4로 진 꼴이었다.  

왜냐면, 상대 선수가 쿠드롱인 만큼 내가 먼저 선방을 때려놔야 상대방의 칼이 좀 불편해질 텐데 그 칼을 오히려 내가 살려놓은 게 된 거다. 한 번의 실수가 너무 큰데, 그게 초반에 나오니까 상대방이 그걸 바로 캐치해서 그 순간 이미 게임이 너무 어려워졌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서는 초반에라도 필요하다면 타임아웃을 써버렸다. 사람들은 내가 타임아웃을 잘 안 쓰는 선수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아주 골고루 제때 많이 썼다.  

사파타와는 PBA 투어 이전에도 대회에서 만난 적이 있나? 

이전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프로 투어에 와서 시합은 처음 해봤지만, 이미 그 전부터 눈여겨보던 선수였다. 선수들은 공 칠 때의 자세와 눈빛, 구사하는 공의 구름 등으로 선수를 판단하는데, 월드컵 때 32강에서 쿠드롱을 만났는데 사파타가 이긴 적이 있었다. 그때 사파타를 보면서 '어디서 이런 애가 갑자기 나타났지’ 그랬다.  

사파타도 그렇고, 다비드 마르티네스랑 하비에르 팔라존이랑 PBA로 이적한 후 몰라보게 성장했다.  

지금 잘 치는 스페인 선수들이 대부분 30대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중반까지가 당구가 제일 많이 성장하는 시기인 것 같다.

그전까지는 멋모르고 경험도 적어서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당구를 쳐서 잘 맞기도 하고, 안될 때는 또 안되는 그런 상태였다면, 나 같은 경우 20대 후반에 결혼하고 애 낳고 이러면서 집중력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고 경험도 늘면서 그때 당구가 제일 많이 늘었다.  

조건휘 선수가 지금 딱 그 시기인데, 조건휘도 최근 부쩍 늘었다. 신정주나 사파타 이런 선수들이 딱 그 나이 또래라 지금 제일 많이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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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소감을 말할 때 체력 훈련을 도와준 트레이너 친구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3쿠션 선수들은 체력 훈련은 잘 안 하지 않나? 

그 트레이너 친구와 운동을 같이 한 지는 3년 정도 됐고, 최근에 대회 두 달 전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세미 사이그너 같은 선수는 운동을 엄청 오래 해서 몸이 진짜 너무 좋은 선수다. 딕 야스퍼스도 매일 아침 조깅을 하고, 외국 대회에 나갔을 때 오전에 호텔 헬스장에 가면 항상 야스퍼스가 와 있다. 내가 헬스장에 가면 야스퍼스가 깜짝 놀란다.  

꾸준히 운동하던 그때가 우승을 못 했어도 4강 이상 입상을 제일 많이 할 때였다. 나도 상체 운동을 하면 근육이 커져서 오히려 당구 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걱정 때문에 하체 운동만 하던 때인데도 체력이 생기니까 장시간 경기에도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고 몸이 힘들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서도 결승전이 끝났는데, 한 경기 정도는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체력 훈련에 다시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세미 사이그너 같은 경우, 누구보다 부드럽게 공을 치지만 또 강할 때는 누구보다 강하게 공을 칠 줄 아는 선수다. 그게 체력 훈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딕 야스퍼스가 이렇게 오랜 시간 4대천왕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

체력 훈련이 당장은 익숙하지 않아 공이 잘 안 맞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멀리 보면 반드시 더 좋은 스트로크를 구사하게 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회 동안 NH농협카드 그린포스 팀원들이 많은 응원을 보내줬다. 팀 리더로서 어깨가 무거웠을 것 같은데? 

너무 큰 힘이 됐다. 우승 확정 때도 눈물이 안 났는데, 우승 소감에서 팀원들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블루원리조트 소속의 사파타와 블루원리조트에서 결승전을 하다 보니 사파타를 응원하는 소리밖에 안 들리는데, 내가 하나 칠 때마다 우리 팀 선수들이 정말 크게 박수를 쳐주더라. 특히 김현우 선수가 진짜 큰 소리로 샷마다 ‘브라보’를 외쳐줘서 그게 큰 힘이 됐다.  

PBA 투어는 응원전이 뜨겁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은 당구선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난 시즌까지 그것 때문에 솔직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응원도 프로당구의 일부분이라면 내가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바꿨다. 이것도 이겨내야 진짜 프로라고 생각한다.

대회에 관중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지금 일부 선수들이나 관계자들의 응원 소리보다 더 클 것 아닌가. 마침 이번 대회부터 관중들이 함께 응원해 주기 시작해서 오랜만에 진짜 시합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사진=이우성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집중력이 많이 좋아졌다. 팀리그의 효과인 것 같다. 시합에 계속 출전해야 하니까 경험이 계속 쌓인다. 게다가 계속해서 방송시합을 하다 보니 방송 카메라가 두렵지 않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어쩌다 한 번 방송 시합을 하게 되면 방송 카메라가 엄청 부담스럽고 두려운데 팀리그를 통해 자동적으로 훈련이 된 것 같다.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매 대회 우승이 목표라고는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NH농협카드 타이틀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목표다. 가장 부담이 되는 대회지만, 우승하면 그만큼 더 행복할 것 같다.  

어떤 당구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사람들이 ‘당구 하면 쿠드롱이지’ 이런 말을 하는 것처럼 언젠가는 나도 그 소리를 꼭 들어보고 싶다. ‘조재호가 당구는 잘 치지’라는 말을 꼭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많이 기다려주셨다. 나도 정말 하고 싶었던 우승인데 두 번이나 무산이 돼서 안타까웠다. 가끔 저를 옹호해주시느라 댓글로 다른 분들하고 싸우시기도 하시던데 이제 우승했으니까 싸우지 마시고, 또 계속 믿고 지켜봐 주시면 열심히 노력해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 PBA도 많은 시청과 사랑 부탁드린다.

 

사진=이우성(675스튜디오)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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