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당구는 선수 연령층의 고령화가 종목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문제를 두고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낡은 이미지로 젊은 유저의 유입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당구 큐를 잡는 어린 선수들이 부족하다보니 엘리트 선수 육성으로 문제가 이어졌다. 포켓볼(Pool)이나 스누커(Snooker)보다는 캐롬(Carom)이 유독 심했고, 캐롬 종목 중 가장 인프라가 취약한 여자 3쿠션이 문제였다.
사실 여자 3쿠션은 당구의 미래가 걸렸다던 올림픽 정식종목 도전과 프로화 추진 부분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게 없었다. 매번 비슷한 수준으로 치러지는 세계대회 규모와 단 1명의 절대 강자 외에 세계적인 수준의 경기력을 갖춘 선수가 없다는 점 등 감춰야 할 게 많은 종목이었다.
이런 여자 3쿠션이 처한 상황을 놓고 설왕설래 말이 많았지만, 당구계로서는 단순히 종목 하나를 포기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방법을 찾아서 반드시 장기적으로라도 해결해야 하는 골치 아픈 과제였다.
여자 3쿠션은 다른 당구 종목에 비해 역사가 가장 늦다.
처음 여자 3쿠션 종목의 세계챔피언을 선발한 것이 1999년이었다. 1928년에 최초로 열린 남자 3쿠션 세계선수권과 무려 71년이나 차이가 난다.
다른 여자 당구 종목과 비교해도 한참 늦다. 여자 스누커는 1976년, 여자 포켓볼은 1948년에 처음 세계챔피언이 탄생했다. 비슷한 시기에 여자 캐롬 종목에서 일본의 가쓰라 마사코가 활약했지만, 당시 여자 세계대회가 없어서 가쓰라는 남자 선수들과 세계 무대에서 경쟁했다.
보통 국제 경기용 당구대에서 61.5mm의 작은 공으로 캐롬 3쿠션을 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여자 당구선수가 남자 선수와 같은 조건으로 3쿠션 경기를 하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나 가쓰라의 경우 하이런 19점을 치고 애버리지 1점대가 나올 정도로 세계 정상급 남자 선수와의 경쟁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경기력이었다. 그래서 주 활동 무대였던 미국은 물론 아시아와 유럽 등에서 명성을 크게 얻었다. 가쓰라는 지난해 구글이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구글 두들에 등장시켰을 정도로 전성기 시절의 업적을 세계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
가쓰라를 효시로 한 여자 3쿠션은 오랜 시간 동안 아주 서서히 시작됐다. 90년대에 넘어와서 세계 각국에서 대표 선수를 출전시킬 정도가 되자 1999년에 네덜란드 헴스테드에서 사상 첫 여자 3쿠션 세계챔피언을 가린 ‘월드여자3쿠션마스터스’ 대회가 개최됐다.
지금은 LPBA에서 뛰고 있는 히다 오리에(일본, SK렌터카)가 당시 24살의 나이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히다는 그 대회에서 애버리지 1.080과 하이런 10점을 기록하고 첫 여자 3쿠션 세계챔피언으로 등극했다.
2002년에 월드챌린지컵이라는 명칭으로 스페인 간디아에서 열린 두 번째 여자 3쿠션 세계대회에서도 히다는 애버리지 0.857과 하이런 8점 등 독보적인 기량을 뽐내며 2회 연속 여자 3쿠션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두 번의 세계대회를 거쳐 정상적인 세계대회 가동이 확인되면서 2년 후인 2004년부터 여자 3쿠션 세계선수권대회가 정식으로 개최됐다. 히다는 세계선수권에서도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해 1999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동안 총 5회 연속 세계챔피언을 지냈다.
히다의 뒤를 이어 지금은 테레사 클롬펜하우어(네덜란드)가 여자 3쿠션 세계 무대를 독차지했다. 캐롬 강국인 한국은 역사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수한 선수를 여러 명 배출했다.
한국에서 여자 3쿠션의 성장은 주목할 부분이 있다. 서두에 말했던 장기적인 문제, 엘리트 선수 수급이 전혀 안 되는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이미래(TS샴푸•푸라닭)와 한지은(성남)은 세계선수권 결승에 올라갈 정도로 성장했고, 그 외에도 한국의 많은 여자 3쿠션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우수한 기량을 뽐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90년대생을 중심으로 여자 3쿠션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점점 많아졌다. 게다가 2019년에 여자 프로당구(LPBA) 투어까지 한국에서 만들어지면서 90년대 후반생을 거쳐 이제는 2000년대생까지 눈에 띌 정도로 당구 큐를 잡는 어린 여자 선수들이 늘고 있다.
한국에서 여자 3쿠션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여자 3쿠션을 ‘걸림돌’로 여겼던 따가운 시선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남자 선수보다 다소 파워가 모자라고 경기력이 부족해도 여자 경기만의 색깔, 그리고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골프나 테니스 같은 스포츠도 여성 스포츠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당구는 오래전 가쓰라가 증명했던 것처럼 ‘남자와 대등할 수 있는 스포츠’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볼 때 완벽하게 남녀가 대등할 수는 없다.
여자 3쿠션의 늦은 역사와 부족했던 인프라를 극복하고 이만큼 올라선 것만으로도 참 대단한 일이라는 얘기다. 다른 종목보다 비록 늦었지만, 더 화려하게 인기 스포츠 종목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할 만하다.
<월간 빌리어즈> 김도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