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우. 사진=빌리어즈앤스포츠 DB
한동우. 사진=빌리어즈앤스포츠 DB

한동우(42)가 오랜 기다림 끝에 프로 데뷔 5년 만에 준결승전 무대에 선다. 동호인 대회마다 휩쓸며 무서울 것 없는 그였지만, 막상 프로 무대는 달랐다. 프로 당구선수들과 겨루면서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가며 좌절했지만,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버텨 여기까지 왔다.

프로당구 2023-24시즌 PBA 7차 투어 '하이원리조트 PBA 챔피언십'의 대망의 마지막 날까지 살아남은 한동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첫 준결승 진출 소감이 어떤가?

아직은 덤덤하다. 실감도 잘 안 나고. 아마도 시합이 전부 끝난 게 아니라 또 해야 하니까 그런 것 같다. 8강에 올랐을 때도 엄청 기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다음 경기에서 서현민과 엄상필 선수 둘 중 이긴 사람과 8강전을 치를 생각을 하니까 그냥 바로 갑갑해지더라.

16강에서는 하비에르 팔라존을 잡고 8강에 올랐다. 팔라존과의 경기는 어땠나?

예전에 팀리그에서도 만나봤고, 잘 치는 선수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예전처럼 치면 내가 이긴다, 예전에 나랑 쳤을 때처럼 치면 나한테 못 이긴다는 생각은 있었다. 그사이 나도 조금 발전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팀리그에서 한 시즌 정도 뛰고 방출됐는데, '기회가 되면 보여주겠다' 이런 각오가 좀 있었나?

사실 내가 팀리그에서 뛸 때가 코로나19 때였다. 당구장 영업 제한이 생기면서 연습을 거의 못했다. 낮에는 일도 해야 했고, 밤에는 연습할 공간이 없고. 팀리그에서 방출돼서 정신적으로 데미지는 없었는데, 일단 코로나가 끝나고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그러면서 작년 3~4월부터 연습을 진짜 열심히 했다.

한동우
한동우

PBA 이전까지 당구선수 경력은 없지만,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매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힐 만큼 잘 치는 선수였다. 프로에서 직접 선수들과 겨뤄 보니 어땠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뭘 모르니까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겨뤄보면 금방 안다. 나는 아직 시작했다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라는 걸 알았다.

뭐가 다르던가?

클럽에서 선수들이랑 연습 경기를 할 때만 해도 승률도 좋고 그랬는데, 막상 시합장에서 만나니까 아예 다르더라. 환경이라든지, 새 테이블과 새 공에 대한 적응력 이런 것들이 아예 상대가 안 되더라. 현타가 제대로 왔다. 그때 내 나이가 30대 후반이었는데, 이제 시작해서 이걸 언제 쫓아가나, 죽을 때까지 하면 쫓아갈 수나 있으려나 생각이 많았다.

서현민 선수와의 8강전에서 1, 2세트는 공타 이닝 없이 6이닝 만에 경기를 끝냈다. 반면에 3세트는 4:13으로 끌려가다가 하이런 10점을 치고 14:13으로 점수를 뒤집었다. 마지막 1점만 더 쳤더라면 경기를 더 빨리 끝낼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매치 포인트다 보니 부담이 있었다. 3세트 시작할 때부터 이것만 이기면 끝난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다. 두 세트를 앞서 있었는데도 계속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현민 선수에게 틈을 주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평정심을 잃었던 것 같다. 진짜 마지막 1점이 남았을 때는 가만히 있는 공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압박감이 심했다.

5차 투어부터 한국 선수들의 기세가 좋다. 이번 7차 투어에서 내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나?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 판만 이기자는 마음으로 왔다. 128강에서 주시윤 선수만 이기자는 목표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일단 준결승전도 첫판에 몰빵하는 전략으로 '한 판만 더 이겨보자'는 마음으로 치겠다. 그다음은 그다음에 생각하겠다.

주위에서 응원해 주는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여자친구도 LPBA 투어에서 뛰고 있는데,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아마 진작에 그만뒀을 거다. 한 번만 더 해보자, 한 번만 더 해보자 해서 지금 5년차가 됐다.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이번에는 좀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좋은 성적으로 같이 고생한 걸 좀 보답하고 싶다. 

(사진=빌리어즈앤스포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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