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빌리어즈(월간당구)>가 창간된 지 32년을 맞게 된다.

필자가 문체부로부터 허가증이나 다름없는 정기간행물등록증을 들고 당구잡지를 발행하겠다고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를 찾아가 박성오 회장에게 협업을 요청했을 당시는 당구장은 <공중위생법>의 적용을 받는 유기업종으로 보건사회부의 관할 아래 있었다. 

그러나 이 무렵은 당구의 스포츠성 회복을 위한 당구인들의 욕구가 분출되고 있을 때였으므로, <빌리어즈>의 창간은 당구의 스포츠화를 위한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1989년 7월에는 마침내 당구장이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체육시설업으로 바뀌어 문체부로 이관되었다. 

1993년 5월 대한당구협회 은평지회 박기호 지회장이 ‘18세 미만 당구장 출입금지’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았을 때,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물의 95%가 <빌리어즈>의 당구의 스포츠 관련 칼럼과 기사였음에 대하여 필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필자는 이때 당구잡지를 발행하는 보람을 뿌듯하게 느꼈다. 

1998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이 개최되고 있던 태국 현지에서 열린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 집행위원회에서 차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참가 종목에 당구가 배제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한국에서 개최되는 아시아경기대회에 당구 종목이 빠진다는 사실에 한국의 당구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필자는 우리 당구인들이 힘을 모아 반드시 당구 종목 채택을 이루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바로 이 ‘권두언’에 게재하며 호소했다. 

그 결과, 경기인 단체인 대한당구연맹, 당구장 경영자 단체인 대한당구협회, 당구용품생산유통업 단체인 한국당구용품협회와 당구언론사인 <빌리어즈> 등의 대표들로 구성된 ‘부산아시안게임 정식종목 채택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세계 및 아시아 당구경기단체와 연계하여 지원을 구하면서, 대한체육회와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한편, 당구선수들을 동원한 ‘100만 명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당구인들의 단합된 노력은 부산 아시안게임이 개최되기 2년 전에 종목 확정이 되는 2000년 11월 12일 부산에서 열린 OCA 집행위원회에서 천신만고 끝에 당구 종목 채택의 쾌거를 이루어냈다. 

이날 부산 현지에 가 있던 대한당구연맹 김영재 회장이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해냈습니다. 당구가 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하고 외치던 그 목소리에 가슴이 뭉클하던 감격을 지금도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필자가 당구계에 와 일한 지난 32년은 결코 순탄한 세월이 아니었다.

초기 10여 년은 당구계의 풍토가 척박하였기에 쉽지 않았고, 당구 단체가 통합된 최근 3년에 가까운 시간은 통합당구단체 회장 선거 이후 당구계의 편 가르기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당구 잡지 발행만으로는 대책이 서지 않는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출판업을 겸해온 것과 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빌리어즈>를 지원해주는 당구용품 생산유통업체들이 있었기에 결간 없이 잡지를 발행하면서 그래도 뭔가 당구계를 위해 유익한 일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당구잡지를 발행하면서 여기까지 온 세월이 어느덧 여든살을 넘겼다. 필자와 동년배인 양귀문 명인이나 임영렬 회장은 이미 유명을 달리했다.

필자의 신앙적인 절제 생활과 건강에 대한 유념으로 지금도 이처럼 집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아직도 이 당구계에서 못다 한 일을 반드시 완수해야겠다는 강한 의지와 집념이 필자의 건강을 지탱해주고 있다고 본다. 

인간의 우수성과 장점은 삶의 발자취를 후대에 전함으로써 후대가 선대의 발자취를 통해 더욱 발전하고 유익한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에 있다.

사회의 어느 부문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당구계 또한 당구가 전래된 기원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 즉 역사를 정확히 사실 그대로 기록해 후대에 전해야 한다. 

한국의 당구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1980년 조동성 씨가 집필한 <내가 본 당구사>가 최초이자 유일한 것이다. 그때로부터 38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집필 내용에 수정을 해야 하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도 발견됐다.

종래의 1909년 ‘순종의 옥돌대’가 한국의 당구 기원이란 설은 1884년 일본에서 제물포(인천)에 당구대가 수입되어 호텔에 놓여졌다는 기록이 나옴으로써 기원이 무려 25년이나 앞당겨지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 당구사는 현재의 이 시점에서 반드시 새롭게 정립되어 집필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134년이라는 방대한 역사를 집필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우선 역사적인 자료를 수집하는 데 한계가 있고, 제대로 된 역사적인 기록을 하려면 집필하는 원고의 양이 많아 그것을 과연 누가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필자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이 역사적인 과업이 필자에게 맡겨진 당구계를 위한 또 한 번의 마지막 봉사라는 사명감으로 집필하기로 했다.

몇 해 전부터 <빌리어즈>에 연재 중인 <이슈별 한국 당구사 바로 알기>에다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여 하루도 쉬지 않고 써가고 있다. 

2019년은 한국 당구 134년을 한 권의 역사기록물로 발간하여 후대에 전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 과업이 완수될 때까지 건강이 유지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꾸준히 집필하고 있다. 

 

 글 김기제 빌리어즈 발행인

저작권자 © 빌리어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